단비의 방

단비가 중학교 3학년 때 방이 세 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전에는 동생과 한방을 썼는데 이사하면서 단비만의 방이 생겼다. 각자의 방이 생긴 자매에게 아빠는 새 침대와 미니 화장대를 선물했다. 단비는 어려서 예쁜 머리띠를 하고 공주님 드레스를 입고 다녔는데 어린 공주님의 방이 이제야 생긴 것 같아 신났다. 사춘기 들어 퉁명스레 굴던 동생도 언니와 따로 지내 좋았을 것 같은데, 아니었나 보다. 세월호라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밤이라는 저녁 시간밖에 없었는데 그 시간도 빼앗긴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나. 사고가 일어난 후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그 '1'이라는 숫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 2015년 4월, 동생이 단비에게 쓴 스케치북 편지에서
단비의 책상에는 2014년 학사 일정이 적힌 단원고 달력이 붙어있다. 의자에 걸쳐진 교복도, 옷걸이의 체육복도 단비가 수학여행을 떠나던 그때 그대로다. 딸이 방을 비운 틈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려고 엄마는 휴지통을 비우고 단비가 늘어놓고 간 옷가지를 깨끗하게 빨아 말렸다. 단비의 초상화가, 바닷물에 훼손된 지갑이, 노란 바람개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는 노란 펼침막이 단비 대신 그 방에 들어왔고 엄마는 딸의 체취를 잃었다. 엄마는 그날의 방 청소를 두고두고 후회한다.
딸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딸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엄마도 이단비, 아빠도 이단비. 2014년 봄 이후 엄마 아빠 이름은 이단비가 됐다. 단비는, 이단비 엄마의 장보기를 도우러 같이 마트 가야 하는데, 단비는, 장담했던 대로, 이단비 아빠의 술친구가 돼줘야 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던 그 방문 열고 나와서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 외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