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이의 방

엄마 옆에서 늘 수다를 떨던 아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방은 유독 더 허전하다. 항상 시끌벅적하게 느껴지던 집은 이젠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적막하게 느껴진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애교가 많던 아들. 늘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재잘재잘 떠들던 성원이의 존재는 이 집의 공기이자 온도였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던 엄마는 성원이와 정말 친구처럼 지냈다. 아들과 퇴근 후에 노래방도 자주 가곤 했고, 가끔 기분 좋은 밤이면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캔을 함께 기울이기도 했다. 학교 땡땡이를 치고 싶다는 아들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다가 외식을 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성원이는 비밀 없이 모든 이야기를 엄마와 나눌 수 있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성원이를 믿고 지지하는 어른이었고, 그 넓은 신뢰의 운동장 안에서 성원이는 마음껏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성원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단정하게 배치된 2단 선반과 벽면.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단원고등학교에서 받았던 상장과 어린시절 사진, 성원이가 평소 사용하던 물건, 성원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메시지와 추모 물품들이 둘러싸고 있다. 특히 왼쪽 벽에 학생들 여러 명이 나온 이미지 사진이 눈에 띈다. 일곱 명의 남학생들이 다섯 명 친구들의 영정사진을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 앉아있다. 노란색 배경으로 남학생들은 입술을 꾹 다물고 단호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한다. 수학여행 다녀오면 꼭 모두 같이 이미지 사진 한번 찍자던 약속을 뒤늦게 지켰다. 그날 이후 열 명이 넘던 친구 중 절반만이 이 땅에 살아남았다. 성원이는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배려심 깊고 쾌활한 성격에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 ‘마이콜’이란 별명처럼 유쾌하면서도 편안한 아이였다. 친구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었고 사려 깊었다. 한번 성원이와 친구가 되면 오래 관계가 이어졌다. 성원이의 자유롭고 다정한 성격에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둥글게 이어진 관계 안에서 친구들은 청소년 시절이라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일탈과 소속감을 함께 공유했다. 매일 학교 끝나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들르던 성원이의 작은 집은 아이들이 잠시라도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삼남매 중 맏이였던 성원이. 아래로 세 살 어린 여동생과 열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아름이와 록이는 성원이 사진을 들고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어린 록이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고, 중2 아름이는 오빠를 떠올리며 작은 미소를 짓는다. 남은 형제들에게 성원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TV 리모컨 채널 싸움으로 서로 투덕거려도 아름이에게 오빠는 든든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평소에 ‘오징어 오빠’라고 놀리며 무뚝뚝하게 대해도 밝고 다정하던 오빠 덕분에 웃을 일이 생겼다. 엄마와 아름이 앞에서 빠른 랩을 하며 춤까지 거리낌 없이 추던 성원이. 아름이는 그땐 그렇게 듣기 싫다고 구박하던 랩하는 오빠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해 4월 팽목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오빠는 차가운 거 겁나 싫어하잖아’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던 오빠 생각이 나서 아름이는 5반 교실 자리마다 핫팩을 하나씩 가져다 놨다. “오빤 특별히 두 개니까 혼자 다 써야 한다.” 오빠 교복을 입고, 오빠 명찰을 그대로 달고 학교에 다니는 아름이 마음속에 성원이는 단원고 학생이던 모습 그대로 여전히 살아있다.

형을 엄마보다 더 좋아하고 잘 따랐던 막둥이 꼬마 록이. 성원이는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동생의 어린이날 선물을 사 오겠다며 수학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형은 제주도에서 좋은 장난감 사 오겠다고 했던 막내와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성원이는 동생들을 끔찍이 챙기던 맏이였다. 특히 어린 록이를 많이 챙겼다. 어린이집 등·하원도 시켜주고 집에서 간단한 요리도 직접 해줬다. 록이에게 성원이 형은 아빠이자 형이자 엄마 같은 존재였다. 형이 너무 좋아 늘 매달려서 헤벌쭉 웃던 아이는 갑자기 사라진 형의 부재가 도저히 실감 나지 않는다. “형은 왜 안 올까? 언제 돌아올까?” 영정사진 앞에서 록이는 친구들과 천진난만하게 논다.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과 장난감을 형 사진 앞에 앞에 하나씩 가져다 놓고, 형 얼굴도 그려본다. ‘이빨 빠지면 형아가 봐준다고 했는데…’ “형! 이거 봐봐! 나 이 빠졌어” 형아 사진 앞에 록이는 빠진 이를 자랑스럽게 가져다 놓았다. 누나와 함께 영정사진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록이 얼굴에서 문득 작은 성원이가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