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준이의 방

형준이의 방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붙어있다. 보통 아이 방의 세계지도는 삶의 무대를 넓게 보았으면 하는 부모님의 은근한 권유를 담기 마련이다. 형준이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문득문득 세계지도를 올려보았겠지. 아마도 어린시절 유학을 다녀와 친숙한 나라인 중국에 시선이 자주 머무르지 않았을까 싶다. 사업을 하는 아빠는 시장조사 삼아 중국을 자주 다니면서 중국이 변화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중국의 가능성을 보고 중국을 선택한 한국 유학생들이 많은 시절이었다. 아빠는 형준이도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며 중국과 한국을 자유로이 오가는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의 장래 계획을 따라 형준이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형준이 책꽂이에는 유학시절의 교재며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다. 엄마 아빠의 걱정과 달리 형준이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유학생활을 잘 해냈다. 중국 아이보다 발음도 좋고, 이야기 대회 본선에도 나가고 반 대표도 되었다. 어린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 모질게 두고 오면서 마음 속은 이미 후회로 가득했던 아빠는 어느 날 ‘엄마 아빠 보고 싶다’는 형준이의 전화에 바로 형준이를 데리고 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형준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유학은 끝났지만 형준이의 중국어 공부는 계속 되었다. 형준이는 중국어 특기를 살려 대학도 중국어과로 진학할 준비를 하였다. 단원고를 선택한 것도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형준이 방에는 에스버드 여자농구단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예쁜 농구공이 있다. 형준이가 중국어만큼 잘하고 좋아한 것이 농구다.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수업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야 농구할 틈이 생겼다. 집에 가는 길, 가방을 던져놓고 친구들과 농구공을 다투며 뛰는 시간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늦게까지 농구를 하는 형준이를 데리러 아빠는 종종 공원 농구장을 찾았다. 아들을 불러 돌아가야 하는데 신나게 농구를 하는 형준이와 친구들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오래오래 지켜보기만 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농구 코트를 누비는 아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의 흐뭇한 얼굴이 떠오르는 형준이의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