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이의 방

경빈이는 여섯 살에 태권도를 시작하였다. 태권도 관장님은 집에서 학교까지 500미터 거리를 30분 넘게 걸어오던 어린 경빈이를 기억한다. 시장 수족관의 물고기들하고도 인사를 나누어야 했으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린 경빈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마음 가는 것 많은 길을 느릿느릿 오가며 꾸준히 태권도를 익힌 경빈이는 열다섯 살에 3품을 땄다. 3품이면 성인의 3단과 같은 품계이다. 태권도를 아는 사람들은 3품(단)부터 진짜 태권도가 시작된다고 한다.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가 많은 아이들이 공부를 위해 태권도를 그만두는 시기이기도 하다. 발차기가 일품이었던 경빈이에게도 3품을 딴 후 선택의 시간이 왔다.


경빈이는 태권도 대회에 나가 우승도 많이 했고 전국 단위 대회에 나가면 늘 상위권 성적을 냈다. 장래 희망도 태권도 사범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야구를 했던 아빠, 중학교 때 육상을 했던 엄마는 운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경빈이가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거라 생각했다. 운동과 공부 사이에서 경빈이의 고민은 길어졌고 엄마 아빠의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경빈이가 긴 고민 끝에 공부를 선택한 날, 아빠는 오랜만에 경빈이와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좋아하는 태권도를 잠시 내려놓고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아들과 그 결정이 고맙고 미안했을 아빠. 그날의 경빈이와 아빠처럼 두 대의 크고 작은 모니터가 나란히 놓여 있다.


2014년 4월 16일, 경빈이의 사망 시각은 두 개다. 오후 6시 36분과 밤 10시 10분. 아침에 사고가 났는데 배 주변에 있던 아이를 저녁에 찾았다. 응급처치로 불규칙하나마 맥박이 돌아온 아이를 헬기로 신속히 이송하지 않고 임의로 사망 선고하고 구조를 방기했는데 특별수사단은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끝까지 구하지 않은 목숨 앞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라는 너무 당연한 물음에 답을 얻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지, 가족들에게는 너무 힘겨운 나날이었다. “꿋꿋하게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어요.” “큰 힘이 되어드리진 못하지만 항상 보고 들으며 관심 갖겠습니다.” “바늘로 뚫린 구멍으로 빛이 새나오는데 그 빛이 모이면 많은 빛이 되지요. 우리가 그 빛이 되어드릴게요.” 경빈이 방 벽에 시민들의 위로와 응원이 적힌 전지가 붙어있다. 그 방에서 가족들은 힘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