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혁이의 방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 속에서 남혁이는 항상 점잖은 모자를 쓰고 있다. 옛날 교복 모자, 중절모 등 어른스럽고 고풍스러운 스타일이 신기하게 어울린다. 할아버지 세대에 태어난 아이의 사진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고전적인 것들이 유독 잘 어울리는 남혁이다. 특히 유치원 졸업 사진 속에서 학사모를 쓴 남혁이 표정은 독립운동가처럼 비장하다. 분명한 목표를 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실하게 전진하던 단단한 성격이 사진 속에도 엿보인다. 남혁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타의에 의해서 공부를 했던 게 아니라, 항상 스스로 세운 목표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졸업하기 전에 꼭 올백을 맞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신기하게도 6학년 2학기 때 시험에서 올백을 맞았다. 마음먹은 일은 끈기를 갖고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다. 남혁이가 혼자 계획을 세워 공부하던 일을 떠올리면 엄마는 대견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 신기했다. ‘공부해라’, ‘게임 그만해라’ 잔소리할 필요가 없는 아들이었다. 중학교 들어와서는 그렇게 자주 다녔던 PC방도 딱 끊더니, 중3 때는 경제적인 부담도 덜 겸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학원도 끊었던 아들이었다. 그저 아이가 몸만 건강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만 바랐는데, 남혁이는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고 재능도 있던 아이였다. 시험 공지가 나오면 자기가 알아서 계획을 짜서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공부를 다 하고 나서야 잠이 들던 아이였다. 엄마는 남혁이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세운 목표를 인내심 있게 성취해내는 아이라서 자랑스러웠다.

잔소리할 게 없었던 아이. 남혁이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아침에 누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났고, 외모 꾸미는데 관심도 없어 10분이면 등교 준비가 끝났다. 학교 다녀오면 밥 챙겨 먹고, 그날 계획한 공부와 다음 날 숙제까지 알아서 다 해놓는 것이 루틴이었다.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닐 때도 단 한 번도 빼먹거나 늦게 가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동생이 어릴 때는 맞벌이 하는 엄마를 대신해 어린이집 하원도 대신 받아주면서 동생을 듬직하게 잘 돌봐주었다. 중학생이 된 동생이 수학을 어려워하면 동생을 붙잡고 차분하게 수학공부를 도와주는 자상한 오빠였다. 요즘 애들처럼 그 흔한 메이커 옷에도 관심이 없어서, 엄마가 사다 주는 무난한 옷을 그냥 입고 다녔다. 남혁이는 부모님이 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아버린 성숙한 아이였다. 어쩌면 그래서 장래 희망도 아빠가 슬며시 지나가듯 얘기했던 검사와 변호사로 굳건히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뿌듯해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꿈을 이룬 것처럼 만족했을 아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애어른이 남혁이 안에 살고 있었다.

아빠는 가끔 이 방에 앉아 남혁이 영정을 바라보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평소 삼겹살을 좋아하던 남혁이를 떠올리면 같이 소주 한 잔 마셔 보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열일곱 살이면 소주 한잔해도 될 나이인데…’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아빠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남혁이를 생각하면 살맛이 났다. 엄마에게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나, 우리 혁이 보는 재미에 산다” 아들이 사준 자전거를 몇 대씩 잃어버리고 와도 그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남혁이가 아빠 외모와 성격까지 똑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빠는 아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그렇게 반듯하고 착하던 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어느 날 남혁이 방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던 아빠가 사전에서 발견한 오만 원짜리 다섯 장. 빳빳하게 차곡차곡 모아놓은 지폐를 보며 아빠는 주저앉았다. 넉넉하지 않았던 용돈을 모아서 아들이 뭘 꼭 하고 싶었을까. 사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보지 못하고 떠난 속 깊은 아들을 생각하며 아빠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들, 기다려. 언젠가 네 곁으로 가마. 그곳에서 다시 만나.”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5권 中 '보석처럼 빛나는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