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이의 방

채연, 희연, 수연 세 자매가 사는 집. 여기는 동생 희연이와 방을 함께 쓰던 박채연의 방이다. 빛이 잘 들어오는 채연이의 방은 벽에도 책상에도 뭔가 잔뜩 붙어 있다.

또래 아이들이라면 하나씩은 방에 걸어두었을 법한 연예인 브로마이드는 물론이고,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호빵맨>, <코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애니메이션 포스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타깃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를 꿈꿨던 채연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이미지들이 다시 우리의 눈길을 끈다. 감성 충만한 소녀라면 꽤 좋아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채연이의 방에 제일 많이 붙어 있는 것은 가족들의 사진이다. 가족 캐리커처 일러스트를 보면 채연이네 가족은 아빠, 엄마, 채연, 희연, 막내 수연, 이렇게 다섯 명이다. 언니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진짜 막둥이 수연이는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언니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무렵에 찍은 신생아 기념사진에서, 갓난아기 동생을 바라보는 채연이의 표정은 정말 인상적이다. 요 작은 생명체가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채연이는 때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때로는 맏언니로서 막내의 응석을 다 받아줬을 것 같다. ‘옷장 갤러리’에는 수연이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그림 네 점이 나란히 붙어있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일 테지만, ‘채연 큐레이터’의 눈에는 어느 대가의 작품보다 재능이 넘치고 훌륭하다고 여겨졌다. 큰 언니의 막내 사랑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채연이는 일기 쓰기도 참 좋아했다. 매 순간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꼼꼼히도 적어놓았다. 풀어내고 담아둘 것이 많아서 일기도 꼬박꼬박 자주 썼다. 때로는 좋아하는 음식 사진으로 일기장의 한 면을 채우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일기장 한 페이지 가득 ‘이상형의 남자’를 적어놓기도 하였는데, 자신보다 4~5센티미터 정도 커야 하고, 바가지 머리를 하면 좋겠고, 친절하고 매너 좋고, 목소리도 좋으면 좋겠고, 옷 잘 입고, 이왕이면 노래도 잘했으면……. 아주 구체적인데 이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걸 쓰고 있는 채연이는 진심이었다.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방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채연이는 가족을 정말 사랑했어. 진짜 소중하게 생각했지.” 이 소리에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본다. 사랑하는 것들로 자장 거리 안을 빈틈없이 채웠던 채연아. 그 한가운데에 중요한 하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