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방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악할 수 있어요?” “어른들은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당연히 세월호 참사 때 나왔을 거라 생각되는 이 질문은 2009년 용산참사를 지켜봤던 어린 성호가 한 말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사제가 되고 싶어 했던 성호가 이 사회를 바라보며 아프게 던진 질문은 매년 반복되고 반복되다 결국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돌아와 덮쳤다. 정작 이 질문을 고민해야 할 어른들이 너무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이, 조용하지만 정의로웠던 소년은 아파하고 분노한다. 어떻게 하면 약자들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평화를 사랑하던 성호가 추구하던 진짜 평화는 온순하고 조용한 것이 아니라, 싸우고 행동해서 모두에게 차별 없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무리를 참지 않았고, 억울하게 오해받게 된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호해주던 아이.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성호도 약자들 편에 서는 사제가 되고 싶어 했다. 역사를 공부하며 약자들의 인권이 침해받는 모습에 누구보다 견디기 힘들어했던 성호가 지금 이 시대를 본다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까.

방 한쪽 벽, 맑고 따뜻한 미소를 가진 성호의 사진들이 액자에 걸려있다. 어릴 때 온순하고 말 잘 듣는 셋째로 자란 성호는 어느덧 조용하지만 적극적이고 밝은 고등학생이 됐다. 성호는 봄날의 곰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였다. 긴 머리에 강아지상 선한 눈매로 성호가 환하게 웃을 때, 늘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이 소년을 사랑하지 않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사진 속에서 성호가 성당 친구들과 가족 사이에 둘러싸여 활짝 웃고 있다. 브이도, 쌍 엄지 척도, 무한도전 포즈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성호가 3D 영화처럼 생생하다. 영성체 기념사진 속 문구처럼 “하나님의 크신 사랑 속에 성장”했던 성호의 짧은 삶이 너무 아프고 아름답게 빛난다. 나무늘보처럼 느긋하고 섬세하던 성호와 천천히 눈을 맞춰본다. 이 시간과 공간 너머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4남매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저절로 입가가 올라간다. 완벽한 행복의 한순간이 이 사진 안에 섬광처럼 담겨있다. 두 명의 누나와 두 명의 남동생 성격을 얼굴 표정 속에서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사려 깊고 평온한 첫째, 자기주장이 뚜렷하지만 다정한 둘째, 성숙하고 밝았던 셋째 성호, 발랄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막내. 각자 다른 색깔의 아이들이 한집에서 서로를 돕고 배려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던 곳. 첫째 누나는 어릴 때 남동생들 목욕도 시켜주고 기저귀도 갈아줬는데,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남동생은 밤늦게 귀가하는 누나를 열심히 마중 나간다. 성호의 부재는 이 완벽한 가족의 균형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누나들과는 인형 놀이를 하고 동생과는 칼싸움을 하던 성호가 사라진 자리는 영원히 치유가 불가능한 구멍이자 상처다. 그래도 가족들은 그 커다란 구멍을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지켜본다. 목격자로 살아남아 증언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던 성호의 다짐을 나침반 삼아 더 오래 더 끈질기게 걸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