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이의 방

“순남아, 너밖에 없어” “이 새끼, 너는 엄마한테 맨날 순남이가 뭐냐. 내 이름이 순남인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 거다” 우진이는 중학교 2학년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엄마를 ‘순남’이라고 불렀다. 아빠가 큰 사고를 당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서 지낸 지 3년 정도 지났을 즈음, 우진이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일하면서 남편 수발까지 들고, 남매까지 키우는 고된 삶을 살고 있을 때였다. 우진이는 가끔 툭툭 내뱉듯이 “순남아…”라고 엄마를 불렀다. “왜?”하고 뒤돌아보면, “힘들어?”라고 속 깊게 묻던 아들이었다. 물론 이 대화는 쿨하게 “돈 필요하냐?” “엉”으로 끝나지만, 모자는 이런 식의 유머로 서로를 꽉 붙들어 주는 사이였다. 모자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꼭 로맨틱코미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듣는 것 같다. 엄마가 TV에서 나오던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르려면 제대로 부르라며 한 소절씩 따라 부르게 했던 우진이. “안 되겠어. 순남아. 음치다 음치. 보다보다 처음 봤어”라고 놀리다가 시크하게 핸드폰에 음악을 다운받아 주던 녀석. 팝을 좋아하는 엄마 핸드폰에 음악을 내려받아 주면서 “칙칙한 건 듣지 말고 신나는 것만 들어”라며 셔플댄스를 신나게 춰 주던 아들. 독서실 가기 전에 과일 먹으며 “순남아, 토마토 좀 사다가 재워놔. 깨워서 먹게”라고 하던 아재개그. 우진이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 기억들이 가득하다. 우진이는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의식 없는 상태로 7년 정도 병원에 있던 아빠는 우진이가 수학여행 가기 몇 달 전 돌아가셨다. 새벽에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울먹이는 엄마 앞에 큰 키의 듬직한 우진이가 우뚝 서 있었다. “순남아, 고생 많이 했어. 수고했어.” 우진이가 긴 팔로 엄마 등을 토닥이며 꼭 끌어안는다. “우진아, 엄마 무서워”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오빠만 믿어” 자신이 무너지면 엄마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들은 장례식 내내 눈물까지 꾹 참고서, 엄마 옆을 끝까지 지키며 아빠 가는 모습을 길게 배웅했다.

책상 위에 크레파스로 색칠한 우진이 그림은 우진이 동생이 오빠를 그린 것. 우진이에겐 열 살이나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일하시랴 바쁜 엄마를 대신해 우진이는 여동생을 거의 아빠처럼 키웠다. 어린이집에서 동생을 하원 시키고 씻겨주는 일도 도맡아 했다. 목욕할 때 버스커버스커 노래를 자주 틀어서, 동생은 그 노래만 들으면 오빠 생각이 난다고 한다. 우진이는 주말마다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항상 동생도 같이 데리고 다녀야 했다. 아장아장 걷는 동생을 끌고 운동장에 가면, 우진이는 공을 차고, 친구 호연이가 항상 여동생을 봐줬다. 바닥에 미키마우스를 그려주며 놀아주곤 했다. 나중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동생은 분향소에서 친구 호연이를 알아봤다. “나 이 오빠 알아. 호연오빠도 수학여행 같이 갔어? 다행이다. 우리 오빠랑 같이 있어서…” 천진한 아이의 말에 어른들은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우진이는 동생이라면 끔찍이 아끼는 아이였다. 아빠가 혼수상태로 누워있다는 사실을 동생은 몰랐으면 했다. 그래서 여동생은 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모른 채 장례식도 가지 못했다. 우진이는 동생이 말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자기가 다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진이는 그 말을 동생에게 전해줄 시간도 없이 갑자기 하늘로 떠나버렸다. 수학여행 떠나면서 여동생한테 뽀뽀를 해주며 “금요일까지만 엄마한테 구박받지 말고 잘 지내”라며 넉살을 떨던 아들은 너무 많은 숙제를 엄마에게 남기고 갔다.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제 자리에 잘 정리된 단정하고 밝은 우진이의 방. 평소 옷을 센스있게 잘 입기로 소문났던 우진이 옷장답게 다양한 색깔의 옷과 독특한 액세서리들이 잘 정돈돼 있다. 축구를 자주 했던 아이라 운동복도 눈에 띈다. 우진이는 진심으로 축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하고 싶어 했다. 공부하길 원했던 엄마의 반대로 전공은 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때 친구들을 모아 축구팀을 만들었다. 용돈을 모아 유니폼도 맞추고, 다른 학교를 돌아다니며 경기도 했다. 왼발로도 공을 잘 차던 우진이는 팀에서 골을 제일 잘 넣는 공격수였다. 축구를 직접 하는 것만큼 보는 것도 좋아했던 아이는 축구 해설가를 꿈꿔 보기도 했다. 새벽에 중계되는 유럽 축구를 헤드폰을 끼고 보면서, 중얼중얼하며 꽤 그럴듯한 해설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엄마 조금 힘들겠지만 자기 공부 좀 하면 안 되겠냐”고 의젓하게 물어보던 우진이. 엄마는 “머리를 잘라 짚신이라도 삼아서 공부 가르쳐 줄 테니, 뭐든 해봐”라며 반겼다. 물론 우진이는 “순남아, 머리가 어딨다고 그걸 잘라 짚신으로 삼니”라며 바로 엄마를 놀렸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까지 짊어지고 진로를 고민하던 우진이의 치열한 한 시절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진이는 바다에서 좀 늦게 나왔다. 5월 5일에 나왔으니 2주가 넘게 지났을 때였다. 당시 늦게 나온 아이들 몸이 상한 경우가 많아서 아빠들이 먼저 가서 확인하던 때였는데, 신기하게도 우진이는 상처하나 없이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깨끗하게 나왔다. “이 녀석은 끝까지 내가 놀랄까 봐 예쁘게 나왔구나…” 남편도 없이 혼자 아들 모습을 확인해야 하는 엄마를 생각했을 우진이의 마음이 마지막까지 느껴져 엄마는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목이 메어왔다. 우진이는 이 방 침대에서 악어 인형을 끌어안고 잤다. 엄마는 가끔 우진이 방에서 잠이 들곤 한다. 그러다 깜짝 놀라 깨서 자기도 모르게 “우진아, 미안해. 엄마가 여기서 잠들었네”라고 말하며 이불을 똑바로 해놓고 거실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끔찍한 악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없는 밤이면 가끔 고장 난 현관 센서등이 혼자서 켜진다. 생전에 우진이가 미친 것 같다고 그렇게 뭐라 하던 등이었는데… 이젠 까만 밤에 혼자 켜진 센서등을 보면, 엄마는 우진이가 다녀간 것 같아 혼잣말을 한다. “우진이 온 거 맞지. 우진이 너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가끔씩 다녀가는 우진을 생각하며 침대의 인형과 이불은 늘 저 사진 속 모습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