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환이의 방

엄마가 간직하고 있던 어릴 적 승환이 사진들. 밝고 의젓한 성격이 하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연년생 형과 함께 승환이가 활짝 웃고 있다. 나이 터울이 적어서 승부욕 많은 두 형제가 티격태격도 많이 했지만, 아마 승환이는 형을 누구보다 많이 의지했을 거 같다. 동생이 덤비면 많이 져주던 형도 동생이 갑자기 사라진 일상이 얼마나 암담하고 힘들었을까. 승환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면서 형제는 아빠와 살게 됐고, 그러다 아빠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승환이는 할머니댁에서 지내게 됐다. 할머니가 엄마처럼 형제를 돌봤고, 승환이는 거의 모든 시간을 형과 함께 보냈다.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의젓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존댓말을 썼고 어른들을 보며 항상 인사를 하고 다녔다. 승환이는 순한 성격이었데, 뭔가 정해놓은 원칙에 어긋나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기면 가끔 아무도 못 당하는 고집쟁이가 될 때도 있었다. 아빠와 형제는 셋이 종종 노래방에도 갔다. 승환이는 노래를 잘하던 아빠가 부르는 노래를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찾아서 듣곤 했다. 그 노래가 좋았는지 승환이 컬러링도 서태지 노래였다. 아빠를 닮아서였을까 승환이도 노래를 잘했다. 단원고에 들어가서 보컬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했다. 집에서만 몰랐을 뿐이지 승환이는 춤도 꽤 잘 췄다고 한다. 조용하고 감성적이었던 승환이는 내면에 숨겨놓은 흥과 끼가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겉은 여려 보이지만 내면은 단단했던 승환이.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확실한 꿈도 갖고 있었다. 따로 배운 적도 없는데도 전용 미용가위와 빗을 사용해 자기 머리도 직접 잘랐다. 나중에 일본 유학을 해서 유명한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 승환이의 개성 있는 앞머리를 보면, 승환이가 심상치 않은 감각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엄마는 남편과 이혼한 후에도 늘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새 가정을 꾸린 남편에게 방해가 될까 봐 망설이다, 2년 동안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을 찾아가 만났다. 엄마와 만나고 헤어질 때쯤 두 형제의 눈에는 눈물만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엄마, 가지 마!’라는 말도 하지 않을 만큼 의젓했던 아이들이었다. 엄마는 괜히 자기 욕심에 불쑥 나타나 아이들만 힘들게 하는 거 같아 그저 미안했다. 아이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클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는 생각에 계속 일을 하다가, 너무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는 먼발치에서 모습이라도 보려고 집 앞이나 학교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때도 있었다. 엄마는 이혼하면서부터 두 아이의 이름으로 계속 일기를 써오고 있었다. ‘멋진 왕자 승현아’, ‘착한 왕자 승환아’로 시작하는 두 개의 일기였다. 엄마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형제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두 아들을 아끼고 깊이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일기였다. 그렇게 쓴 일기를 작년에 형 손에 들려줬다. 그리고 가끔 떠올린다. 그 일기를 봤다면 승환이는 엄마에게 마음을 열어줄 수 있었을까. 아이들이 빨리 커 주기만을 기다리다가, 엄마는 2013년 여름부터 두 아이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승환이는 답이 없었지만, 큰아이한테 문자가 와서 형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승환이는 아직 엄마를 만나기 힘들어했다. 엄마는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답신 없는 문자를 계속 묵묵하게 보냈다. 그렇게 기다리다 들이닥친 것이 4월 16일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승환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형을 만났을 때 승환이 얼굴을 딱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승환이가 엄마의 부재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품고 생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왔다. 아이가 오랜 시간 했던 오해는 언젠가 때가 되면 풀 날이 올 거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은 엄마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승환이가 마지막에 보고 싶었던 엄마를 어떤 마음으로 불렀을까. 그 마음에 원망과 아픔이 섞여 있었다면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던 엄마는 바다 한가운데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미안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승환이 사진을 어루만지며 노란 나비를 하나씩 붙여본다. 아이들과 마음껏 놀고 웃을 수 있던 시간이 꿈결처럼 반짝인다. 엄마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을 노란나비에 실어 승환이에게 보낸다.

2014년 4월 16일, 일하는 중이었던 엄마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비행기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뉴스 화면과 멘트가 너무 안 맞는다고 말하던 친구의 예상은 적중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고, 아이는 생존자 명단에 없었다. 그렇게 급하게 왔던 날 그대로 진도에서 2주 넘는 생활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안에서 온갖 지옥을 다 경험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시간에 오롯이 승환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체육관에 있던 성당에 가서 매일 승환이를 기다리며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닥에 내려놓은 묵주 십자가에 작은 빛이 빛났다. ‘빛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해가 이동하면서 그 빛에 승환이 얼굴이 커다랗게 비쳤다. 옆에 같이 놔둔 명찰에 있던 커다란 승환이 사진이 묵주 십자가에 비췄던 것. 그 순간을 엄마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이틀 후, 승환이는 뭍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승환이를 기다리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승환이의 청소년기 시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진도에서 함께 기다리던 현철이 부모님을 통해서 짝꿍처럼 붙어 지내던 현철이가 알던 승환이의 모습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있지 못했던 시간을 잠시라도 끼워 맞춰 볼 수 있어서 엄마는 고맙고 고마웠다. 진도를 떠나며 현철이네 가족에게 미처 인사를 못 했지만, 현철이가 꼭 가족 품에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승환이 장례식장에 혼자 찾아와 조용히 앉아있던 한 여자아이는 알고 보니 승환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었다. 배에서 생존했다는 여학생은 엄마가 모르던 승환이 이야기를 오래 들려주었다. SNS를 보며 가장 최근의 승환이 얼굴과 취향도 알 수 있었다. 둘은 어느덧 딸과 엄마 사이처럼 친해져서 의지했고,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낸다. 엄마는 승환이가 딸을 선물해 주고 갔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참고기록 : 4.16기억저장소 ‘아이들의 방’ 승환어머니 구술 인터뷰) (참고문헌 : <416 단원고 약전> 6권 中 '큰 소리로 꿈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