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이의 방

민트향 푸른 방

새하얀 벽에 책상과 옷장, 침대가 퍼즐처럼 딱 맞게 들어가 있는 유정이의 방. 작은 방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이 공간은 유정이의 성격처럼 느긋하게 여유 있다. 뭘 더 갖거나 모으려고 애쓰지 않아서 잔짐 하나 없는 공간이 눈을 편안하게 한다. 흰색 바탕 벽에는 민트색으로 포인트를 준 가구들과 하늘색 무늬의 이불이 정갈하게 눈에 띈다. 유정이도 청량한 푸른 계열의 색을 좋아했나 보다. 단정한 색감 때문인지 마음이 평안해진다. 창밖으로는 초록 나무들이 보인다. 유정이 침대에 누워있으면 창밖의 나무들이 더 잘 보일 것만 같다. 음악을 틀어놓고 이 침대에 뒹굴뒹굴 누워서 흔들리는 나뭇잎과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봤을 유정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장 속 유정이의 고민

유정이의 책장에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유정이가 봤을 다양한 책들이 보인다. ‘도라에몽’, ‘짱구는 못말려’ 같은 만화책들부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봄봄’ 같은 필독 단편 소설도 보인다. 책들의 제목을 쭉 읽어보며 청소년기를 지나던 유정이의 생각과 마음도 짐작하게 된다. 한창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 ‘십 대답게 살고싶어’하던 유정이는 ‘나는 왜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란 물음을 수없이 던졌겠지. 그리고 얻은 결론은 ‘이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포기하지 않는다’면 ‘꽃들에겐 희망’이 있고, 결국은 삶의 과정을 통과하며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법’도 조금씩 터득해 나가게 된다는 것. 유정이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진로를 고민하며 제과제빵 학원에 다녔다. 아마 동네에서 빵집을 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겠지만, 본인도 빵과 과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결심한 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다. 그 안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현실적인 생각, 가족들과 함께 성공하고 싶다는 속 깊은 마음이 모두 담겨있었겠지. 그리고 물론 쿠키 만드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도 컸겠지. 자기가 직접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선물해 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으니까. 유정이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하며 뿌듯해했다. 제과제빵사가 돼서 예쁜 가게를 꾸려나가는 것이 유정이의 꿈이었다. 유정이가 즐겁고 기쁘게 만들었을 빵과 과자는 얼마나 향긋하고 달콤했을까.

편지를 쓰는 정성

유정이는 평소 가족들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도 정성껏 편지를 써드렸다. 할머니 집에는 유정이 편지만 따로 모아 놓은 편지 상자가 있을 정도였다. 엄마, 아빠, 동생 생일 때도 선물과 함께 또박또박 적은 편지를 썼다. 평소 용돈이 부족했던 유정이가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유정이가 동생과 함께 용돈을 모아 부모님 생일 때마다 선물한 매니큐어, 향수, 브로치, 지갑…. 소박한 물건이지만 부모님을 관찰하며 고심하며 선물을 고르며 걸어 다녔을 남매의 시간이 떠오른다. 초등 5학년이 끝난 겨울방학, 유정이가 쓴 편지에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엄마, 아빠 일은 넘 속상해하지 마세요. 엄마 곁엔 저와 승민이가 있잖아요. 긋죠. 앗,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도록 공부 열심히 할게요. 그때까지만 기다리세요. 사랑해요. 엄마.” 뭔가 부모님에게 힘든 일이 생겼고, 옆에서 지켜보던 맏이 유정이는 어떻게서든 엄마에게 힘을 주고 싶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가족들과 함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캠핑카. 유정이는 어른이 돼서 성공하면 엄마에게 꼭 캠핑카를 선물하고 싶었다. 빵집 운영하랴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 참 소박했던 유정이의 소원에 마음이 먹먹해지고 만다.

예쁜 손글씨로 쓴 빵 이름

유정이는 어려서부터 또박또박 글씨를 잘 썼다. 자라면서 글씨체가 조금씩 더 동글동글하고 예쁘게 변했다. 그냥 볼펜으로 썼는데도 꼭 POP 글씨체처럼 선명하고 멋스럽다. 유정이는 예쁜 글씨체를 활용해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빵집을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 자꾸 손님이 줄어드는 빵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유리문 앞에 빵 메뉴를 매직펜으로 쓴 노란색 도화지를 붙여두기도 했다. 매장에 빵마다 적혀있던 이름표도 손글씨로 정성껏 다시 만들어 교체했고, 저녁부터 50% 할인되는 깜짝 세일 전단지도 직접 만들었다. 유정이의 대활약으로 가족들은 빵을 빨리 팔고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오! 유정 빵집” 유정이가 직접 만들고 싶어 했던 빵집 간판 이름이다. 직접 만든 빵과 과자에 손글씨로 예쁜 이름을 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유정이의 꿈이 저 하늘에서는 빵처럼 부풀어 오를 수 있었을까. (참고문헌 : 416 단원고 약전 ‘오 유정 빵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