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태의 방

승태 방을 장식하고 있는 물건들만 봐도 운동을 많이 좋아하는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유명한 해외 축구 스타의 모형들, 축구공과 축구화, 야구공과 글로브, 승태는 어려서부터 몸 쓰는 걸 좋아하던 낙천적인 아이였다. 서너 살 때 이미 인라인을 탈 줄 알았고, 유치원 때부터 배드민턴을 꽤 잘 쳐서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할 정도였다. 동네에서 꽤 잘나가는 축구선수였다. 선부동 아파트 단지별로 아이들끼리 축구팀을 만들어 리그전을 벌였는데, 승태가 소속된 15단지는 최강팀이었다. 공격수였던 승태는 훈남에 실력도 좋아 팬이 많았다. 경기를 보던 누나들 입에서 귀엽고 잘생겼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장난기가 많고 웃음도 많았던 승태는 소위 말하는 인싸였다. 엉뚱한 말이나 행동으로 친구들을 웃겼고, 승태가 만든 재밌는 말투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 됐다. 흥이 많던 승태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갑자기 셔플 댄스를 추다가 쫓겨날 정도로 발랄한 아이였다. 친구들은 승태를 ‘관심종자’라고 불렀는데, 본인은 그게 좋았는지 게임 아이디도 ‘관심의 대명사’로 썼다. 15단지 축구팀 아이들은 PC방도 함께 가고, 독서실도 함께 가던 끈끈한 사이였다. 모두 다른 고등학교로 흩어졌을 때도, 각자 교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참사 이후에 다시 만난 친구들은 호진이와 승태 사진을 들고 똑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승태 생일선물로 축구공과 축구화를 사 왔던 친구들이다. 승태 방 장식장에는 그 두 장의 사진이 양쪽 문에 하나씩 붙어있다. 그 짧은 시간에 한껏 장난을 치며 코믹하게 사진을 찍던 소년들은 어느 순간 너무 어른스러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승태네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낙천적인 엄마와 자상한 아빠, 서로를 아끼던 남매가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정답게 지냈다. 휴가 때는 꼭 시간을 내서 가족여행을 많이 다녀서, 여행지에서 승태와 찍은 가족사진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엄마와 승태는 친구처럼 가깝고 다정한 사이였다. 엄마는 승태를 많이 안아주었고, 얼굴과 등도 많이 쓰다듬어 주곤 했다. 고등학생이 됐어도 잠잘 때면 꼭 뽀뽀하며 ‘잘 자라’는 인사를 의식처럼 나눴다. 장난기 많은 승태는 거실에 누워있는 엄마 뱃살을 당겨보기도 하고, 설거지하는 엄마 뒤에 머리를 기대고 서 있곤 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다가도 좋은 곡이 나오면 얼른 엄마에게 들려주던 섬세한 아들. 엄마는 어디선가 승태가 “엄마~”하고 부르면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나타나 품에 안길 것만 같다. 승태에겐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둘은 어릴 때 오랫동안 같은 방에서 이층 침대를 함께 썼기 때문인지 유독 사이가 좋았다. 밤늦게까지 낄낄대며 온갖 수다를 떨었고, 식탁에 앉아서도 웃긴 이야기를 하느라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깔깔대곤 했다. 동생 민지는 목을 끌어안고 장난을 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털털한 아이였지만, 오빠는 옷을 사거나 머리를 자를 때면 꼭 민지의 조언을 들었다. 사고가 난 직후, 승태 교실 책상에는 민지가 남긴 애절한 포스트잇 메시지들이 유독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빠, 난 오빠가 살아올 거라고 믿어! 오빠 강하잖아! 그리구 나랑 내 친구들 다 기도 많이 했어!! 다쳐서라도 돌아와 줘. 제발!! 제발 오빠 돌아와 줘…”

승태는 크면 클수록 아빠를 더 닮아갔다. 팔자걸음이며 말투, 행동까지 쏙 빼닮아서, 주변 사람들은 가끔 승태와 아빠를 헷갈리기도 했다. 닮은 만큼 승태는 아빠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음악을 좋아하던 아빠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노래도 많이 들었고, 역사를 좋아하던 아빠와 산책하며 역사 이야기도 자주 나눴다. 원래 승태는 체육 선생님을 꿈꿨었는데, 아빠가 복무했던 군대에 초대받아 다녀온 뒤에는 군인이 돼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말다툼할 때도 엄마가 서운할 정도로 아빠 편을 많이 들어주던 아들이었다. 승태가 중학교 3학년 때는 계단에서 굴러 뼈에 금이 가서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그때 아빠는 다리를 다친 무거운 승태를 업고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꽤 고생했다. 아마 집안에 남아있는 목발과 깁스 신발은 승태가 당시 사용하던 물건이었을 거다. 한동안 승태의 발이 되어 한 몸처럼 움직였을 이 물건을 가족들은 잘 간직하고 있다. 아빠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몇천 번이고 다시 돌아가서라도 그때 승태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다. 너무 아깝고 귀한 아들을 허망하게 잃은 후 아빠는 회사도 그만두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됐다. 배낭에 손바닥만 한 승태의 증명사진을 걸고, 이젠 아들과 어디든 함께 다닌다. 참사 100일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과 진행한 도보 순례길에는 승태의 겨울 점퍼와 하나 남은 팬티까지 입고 걸었다. 승태 증명사진이 걸을 때마다 가방에서 흔들렸다. 아빠는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아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6권 中 '아빠,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