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의 방

사진 속의 소년 정인이는 배우 이종석을 쏙 빼닮은 얼굴에 178cm가량의 큰 키, 늘씬한 체형을 가졌다. 축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운동도 잘해 그 멋짐은 배가 되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자라고 얼마나 더 번듯해질지 기대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 된 정인이의 모습을 그저 상상해 볼 수밖에 없다. 화려한 조명을 온몸으로 느끼며 런웨이를 당당하게 걷는 패션모델이 되고 싶었던 정인이의 꿈, 하늘에서는 아마 이루어졌겠지 믿으면서. 아빠가 기억하는 정인이는 동작도 빠르고 다른 사람에게 지는 것도 싫어했다. 아빠는 정인이가 중학교 때 즈음, 정인에게는 당구를, 여동생에게는 볼링을 가르쳐주고 같이 게임하는 것을 즐겼는데 그때 아들의 날쌘 모습을 보는 것이 제법 흐뭇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바라보기에 ‘정인이가 좋은 것들을 참 많이 가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공부를 조금 안 하긴 했지만 말이다. 정인이는 수학여행 떠나기 전에 아빠에게 “수학여행 다녀오면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정인이와 교내 스터디 그룹 활동을 하는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공부에 조금씩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아가는 정인이를 보며 아빠는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 묵묵히 지켜봐 주길 잘했다고 새삼 느꼈다.
정인이도 이런 아빠의 사랑과 노력을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사춘기가 온 정인이가 호기심에 담배를 피우다가 아빠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꾸중을 듣고는 곧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긴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부자지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정인이가 떠난 후, 거의 2주 가까이 거실 소파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인이의 여동생이 학교에 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그런 날들 속에 돌아온 아빠의 생일날, 정인이의 여동생이 아빠에게 비닐에 담긴 선물을 건넸다. 옷이었는데, 하나는 오빠가 주는 거고 하나는 내가 주는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빠는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인이가 친구들에게 했던, “아빠가 친구처럼 대해줬다”는 말이 뒤늦게 아빠에게 돌아와 몸을 일으킬 힘을 주었다. 그 힘으로 아빠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하고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정인이와의 약속을 위해 지난한 시간 동안 많은 곳을 뛰어다녔다. 아빠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잘 지켰던 정인이를 떠올리면서.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7권 中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소년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