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이의 방

깨박이 김시연의 방이다. 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했던 시연이의 방은 벽지도 쿠션도 베개도 인형도 액자도 캔들 받침도 온통 노란색이다. 시연이의 방을 멀리서 보고, 다시 가까이서 살펴보면 일종의 충만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산만하지 않고 온전히 충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시연이가 지녔던 에너지가 아직도 방안을 채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누구보다 강렬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용기와 자유로운 마음을 지닌 아이였으니까.

방 한편을 채운 키보드와 기타만 봐도 시연이가 음악을 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사연이 특이하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첫 시험에서 올백을 맞을 만큼 수재였지만 음악이 좋아서 과감히 공부를 놓았다고 한다.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고, 기타를 치며 자작곡 한 노래를 불렀던 시연이는 악보를 보지 않고도 들은 음악을 기타로 칠 정도였다. 보통 공부를 잘하면 예술은 취미로 하자거나, 대학 가서 하자는 생각을 할 텐데, 시연이는 더 좋아하는 것에 온 에너지를 쏟을 준비가 되어있는 직진 소녀였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이미 예술가인 시연이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은 저 작은 소품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슷하지만 다른 디자인의 뿔테안경과 취향을 잘 보여주는 인형들에서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시연이의 단단한 내면이 비친다.
“구조대 왔어요. 구조되자마자 전화할게요!” 엄마와 나눈 마지막 통화 내용이다. 차디찬 바다에서 건져졌을 때, 저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고 있었다는데……. 나 죽다 살았다고, 그렇지만 잘 구조되었다고 엄마와 친구들에게 얼마나 간절히 전화를 걸고 싶었을까. 하늘나라에 가면서도 놓지 못한 핸드폰에서는 아직도 불이 들어온다.
방 안 가득 친구들과 낙서를 하며 깔깔대던 웃음소리, 네가 부른 노랫소리, 너를 그리워하는 친구들, 네가 사랑했던 가족들, 찬란하게 빛나던 너의 재능, 개구쟁이 표정의 사진들과 그 표정에 잘 어울리는 깨박이라는 별명. 네가 남기고 간 것들이 너무 많아서, 시연이 엄마처럼 우리도 그냥 시연이는 수학여행 중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