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이의 방

지우고 싶지 않은 흔적이란 이런 것일까. 진용이 축구화에 흙 얼룩이 그대로다. 축구공을 따라 운동장을 누비는 진용이의 시간이 축구화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운동화의 얼룩을 지우지 못하는 마음,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달리는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다시 아이와 마주하면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친구 많은 아들아, 네 친구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간 우리는 너랑 놀 기회가 없겠구나.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누나랑 놀자꾸나. 축구가 아무리 재밌어도 그렇지, 그렇게 오래 뛰니까 얼굴이 더 까매지잖아.”


“엄마 닮은 누나처럼 나도 고운 피부를 갖고 싶어요. 연고를 바르고 피부에 도움이 되는 화장품을 골라 발라도. 아, 여드름은 너무 고민이야.” “아들아, 연고를 바르듯이 열여덟 네게 약이 되는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구나. 시간이 흐르고 여드름이 사라지면 대신에 네 삶에는 선택과 책임이 커지지. 네 생의 어느 순간도 겁내지 말고 나아가렴. 우리가 늘 함께 있으니 아빠처럼 너도 멋진 사나이가 될 거야.”


“아들아, 너를 보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지. 인정할 수 없는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너와 함께 하기로 했던 일들도 하나씩 해나가고 있지. 네가 대학을 가면 같이 가기로 한 미국 여행. 우리 네 식구가 같이 떠나던 예전의 가족여행처럼 엄마와 아빠와 누나가 네 사진을 안고 다녀왔다. 이제는 우리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하지. 하지만 아빠가 전에 얘기했듯이 중요한 건 마음에 담는 거란다. 사진 대신에 우리는 마음에 우리의 가족여행을 담았지. 언제나처럼 우리는 늘 네 곁에 함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