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이의 방

평소 책을 많이 읽던 호성이의 방. 책장에는 삼국지와 수호지, 삼국유사, 한국사 등 시리즈 책들이 일렬로 꽂혀있다. 이 책들을 보며 호성이는 역사와 사회를 보는 기준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이답지 않게 유독 생각이 깊었던 호성이의 성품은 아마도 많은 책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호성이의 사춘기는 한 시기를 지나는 생각과 고민으로 골똘하던 시간이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도 생겼고, 옳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정의를 추구하려는 마음도 자리 잡았다. 자기 자신과 가정 경제를 현실적으로 돌아보며, 중3 겨울방학 때쯤에는 진로에 대해 고민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보는 것. 고등학교 들어가서 호성이는 결심한 만큼 공부에 꽤 집중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충실하게 공부했고, 바른생활실천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호성이는 시를 쓰는 학생이었다. 호성이가 쓴 시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깊고 아름다웠다. 한글날 기념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그 이름>이란 시를 보면, 호성이가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품었을 수많은 사유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부르는 것은 쉽지만/ 되는 것은 어려운 그것/ 불려지는 것은 쉽지만/ 책임감을 가져야 되는 그것 부모” 이 시를 읽다 보면 부모가 가진 이름과 무게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엄마는 아들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호성이의 시를 읽었다. 그 뒤로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던 아들을 떠올리며, TV나 뉴스가 아닌 책에 실리게 되는 인터뷰는 꼭 했다. 아들의 시를 지면에 싣고 싶어서였다. 그렇게라도 엄마는 아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호성이가 쓴 <나무>라는 시가 ‘금요일엔 돌아오렴’ 책에 실리게 됐다. 이 시를 받고 홍은전 작가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밑동만 남은 나무는 어머님 같고, 베어진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건 호성이 같아서” 나무 - 신호성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호성이는 조곤조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릴 때 생활기록부를 보면 “말을 조리 있게 또박또박 잘하고, 조언도 잘함. 가끔 비범한 말이나 어른스러운 태도로 선생님을 감동시키며, 아주 귀엽고 사회성이 뛰어남” 이란 말이 쓰여 있을 정도였다. 배려심 많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던 호성이는 부모님과 가정경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던 철이 일찍 든 아이였다. “호성이는 공기 같고, 보금자리 같고, 친구 같고, 친정 같은 존재였어요. 나 철들라고 보내준 선물 같았죠. 애 때문에 힘든 세월도 많이 참았어요.” 자상하고 선한 막내아들은 정말 엄마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면 엄마는 쉬라며 이불을 깔아줬고, 학교 갔다가 늦게 들어와 피곤할 때도 꼭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와 짐을 들어줬다. 빌라 반장이던 엄마가 집집마다 관리비를 걷으러 다닐 때도 꼭 호성이가 손전등을 비춰주며 따라다녔다. 사고 난 뒤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불 비춰주던 아이’를 기억하며 엄마 손을 잡고 많이 울었다. 엄마는 항상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아끼던 호성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도 건성건성 대답하던 아빠를 끌어안고 난데없이 “아빠, 사랑해요. 엄마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요”라는 말을 남기고 간 아들. 수학여행 가던 날 엄마가 주던 3만 원 중 2만 원을 다시 돌려주던 아들. 그날 엄마는 호성이와 손잡고 짧게 걸었던 시간, 아들이 마지막으로 볼 뽀뽀를 해주며 끌어안아 주던 순간을 오래 마음에 담아둔다. 그 잠시의 촉감과 기억으로 지금도 매 순간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엄마는 어쩐지 호성이와 계속 연결돼 있는 것 같았다. 남편과 만나지 않았더라도 왠지 호성이는 아들로 태어났을 것만 같았다. 그런 걸 호성이도 느꼈을까. 자기가 아플 때 엄마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이런 말을 했다. “엄마하고 나하고 연결돼 있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 2014년 4월16일 출근길 버스 안에서 엄마는 문득 “애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반월공단 구내식당에서 일하는데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렇게 예감만으로도 청천벽력 같던 일이 닥친 후, 엄마의 삶은 완전히 뒤바꿨다. 엄마는 호성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산다. 삶에 깊은 회의감이 들고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호성이의 목소리가 엄마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멍하니 있다가도 “엄마! 뭐해?”라는 소리가 들리면 ‘어! 똑바로 살아야지’하는 생각이 버쩍 들었다. 엄마는 분향소든 팽목항이든 국회든 어디든 가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이상한 병에 걸린 것처럼 뭐라도 해야 편했다. 그래야 아이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가시는 거 같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죽어서 호성이 얼굴을 제대로 못 볼 것만 같았다. “지금은 상태가 나아진 게 똑바로 살다가 내 새끼 봐야 하니까, 내 새끼 보려면 이렇게 멍청하게 살면 안 되는데 싶어서… 가서 원 없이 호성이 만져보고 끌어안고 싶어요.” 그래서 매일 엄마는 호성이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힘을 달라고 부탁한다. “호성아, 미안해, 엄마가 힘들 때마다 힘을 줘. 너가 너무 억울하게 가서, 엄마한테 많은 용기가 필요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힘들어. 그런데 알려야 해. 엄마가 용기를 내서 해볼게.” ‘죽어서 호성이를 다시 만나서 살고싶다’는 눈물겨운 꿈을 꾸는 엄마의 싸움이 아직 너무 길게 남은 것 같아 외로운 밤. 어디선가 호성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참고문헌 <금요일엔 돌아오렴> 中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