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의 방

눈 위를 가면

위를 가면 발자국이 따라와요. 내가 길을 잃을까 봐 졸졸졸 따라와요. 눈 위를 가면 발자국이 나를 따라와요.
-2004년 김지인 作 지인이의 방을 들여다보자. 꽃무늬 벽지와 이불,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하늘색 천장, 샛노란 색깔의 커튼까지 밝은 기운이 솟아나는 방이다. 인테리어에 사용된 큼직큼직한 무늬들은 부모님 취향은 아닐 테고 분명 지인이가 골랐을 거라 짐작되는데, 이 방의 주인은 왠지 성격이 밝고 시원시원했을 것 같다.

지인이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것,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사도 다양했고, 하고 싶은 것도 자주 바뀌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실용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대회에 나가 상을 탈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고,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외동딸로 자라면서 가족과 친척들, 사촌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지인이의 옛 사진을 들여다보면, 엄마도 아빠도 지인이도 사촌들도 모두 행복한 얼굴이다. 지인이는 8살 정도 되었을 무렵, <눈 위를 가면>이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다. ‘내가 길을 잃을까 봐’ 나를 ‘졸졸졸 따라’오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노래한 시인데, 어린 나이에 느꼈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인식이 엿보인다.


8살 지인이에게 세상은 깨끗하고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었는데, 십 년 후 세상은 왜 아이들에게 지독히도 위험한 곳이 되었을까. 4월 16일, 바다는 눈보라보다 매섭게 아이들을 삼켜버렸다. 바다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여행용 가방과 핸드폰만 덩그러니 남긴 채 지인이는 떠났다. 지인이가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엄마 아빠는 그렇게 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