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섭이의 방

“3월에 중앙동 바로 옆에 고잔신도시 전철역 있는 데 꽃이 이렇게 피었더라고요. 거기 가서 현섭이가 사진을 딱 찍은 거예요. 저게 마지막 남긴 가족사진이 된 거죠.” 현섭이가 수학여행 갔다 오면, 가족들은 그동안 바빠서 못 가봤던 여행도 가고 제대로 된 가족사진도 찍기로 했었다. 현섭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수학여행 먼저 다녀오고 여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여기를 가볼까, 저기를 가볼까, 무엇을 먹을까 신이 나서 계획을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활발하고 잘 웃고, 개구진 막내였던 현섭이가 없는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다.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며 집안을 환하게 만들던 현섭이가 떠난 후, 가족들은 이사를 택했다. 안산에서 태어나 와동에서만 18년을 살았던 현섭이의 모든 기억과 추억이 고스란히 남은 집과 길 위에서 현섭이의 부재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그리운 이의 사진과 물건들이 있는 이곳에서 현섭이를 만난다. 여기에는 육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어 했던 현섭이의 꿈과 노력도 있고,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을 좋아했던 현섭이의 순수한 마음도 있고, 집 안에서 별명이 ‘짱구’였던 현섭이를 귀여워했던 가족들의 다정한 시선도 있다.
부모님께서도 물론 현섭이를 아꼈지만, 5살 터울의 누나는 특히 현섭이에게 지극정성이었다. 둘은 자주 쇼핑도 가고 영화도 보고,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냈다. 누나는 학창시절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 본인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동생이 똑같이 겪지 않도록 늘 현섭이를 챙겼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현섭이에게 신발도 사 주고, 용돈도 주었다. 현섭이는 평소에 가족들에게 뭘 사달라거나 해달라고 하지 않고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이었지만 딱 한 번, 갖고 싶은 게 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톡톡한 패딩잠바 이야기를 하며, “나 그거 하나 사주면 안 돼?”라고 물었다. 동생이 어디 가서 기죽거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던 누나가 선뜻 현섭이에게 잠바를 사 주었다. 현섭이는 참 좋아했다. 남매의 정이 담긴 그 빨간 잠바는 아직도 옷장에 그대로 있다. 아빠가 입기에도 너무 크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7권 中 ‘매일 너의 이름을 부른다, 현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