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훈이의 방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 속 아이, 미소 지은 얼굴이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준다.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드러나듯 제훈이는 실제로도 너그럽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급에서 ‘선행상’을 받을 사람을 추천해야 한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후보였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생활기록부에는 ‘자기보다 힘없는 아이를 잘 보살피고 힘을 실어준다, 모든 애들에게 신망 받는다’는 평가가 적혀있기도 했다. 같은 반 친구라면 이런 제훈이의 성품을 모를 수가 없다 보니 2학년 때에는 8반의 반장이 되었다. 또한 봉사동아리 TOP의 회장 역할도 맡았다. 그런 제훈이의 선함은 단순히 착한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속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제훈이에게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하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제훈이는 “친구는 순위를 정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늘 친구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좋아하는, 제훈이다운 대답이었다.
제훈이네는 가족사진이 많은 편이다. 부모님은 제훈이와 남동생을 데리고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다. 특히 캠핑 가는 것을 즐겼다. 텐트 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계곡에서 물고기 잡으며 돈독한 정을 다졌다. 이렇게 서로 애정이 가득한 가족 간이었지만 제훈이가 떠난 후 비로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제훈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훈이가 가족 한 명 한 명을 자상하게 챙기고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생일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하고 그가 나온 드라마의 OST를 휴대폰에 다운 받아 준 적도 있고, 아빠의 생일에는 양복을 입고 출근할 때 쓰라며 페브리즈와 차량용 방향제를 준 적도 있다. 시간이 흘러 방향제는 향이 다 날아가 버렸지만 아빠는 제훈이의 선물을 평생 버릴 수 없을 것만 같다. 동생에게도 제훈이는 ‘부모님보다 좋은 착한 형’이었다. 어릴 때부터 형을 무척이나 따라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놀기보다 두 학년 위의 형네 교실을 더 자주 들락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제훈이가 없는 지금, 가족들은 제훈이가 하늘 위에서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해 본다.
이과반이었지만 글짓기에도 뛰어난 재주를 가진 제훈이의 꿈은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제훈이의 방에서 책상에 앉아 열여덟의 생각들을 차근차근 적어 나갔을 순간들과, 이따금씩 학교에서 준 달력을 바라보며 미래를 향한 계획을 세웠을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2014년 그 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8권 中 ‘형은 나의 우주입니다’) (참고문헌 <금요일엔 돌아오렴> 中 ‘다른 아이들을 볼 수 있게 된 시간에 감사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갈 시간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