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이의 방

마치 어젯밤까지도 중식이가 컴퓨터 게임을 하며 간식을 먹었을 것 같은 방. 의자에 걸려있는 가방과 츄리닝, 선반에 쌓인 닭가슴살, 컵라면, 햇반 등의 간식거리들이 당장이라도 이 방문을 열고 나타날 중식이를 평소처럼 심상히 기다릴 것만 같다. 컴퓨터 본체에 깔끔하게 걸린 헤드셋 두 개. 동네PC방에서 열리던 게임 대회에서 상까지 탈 정도로 게임을 잘하던 중식이가 부지런히 쌓은 공력이 정리 정돈에도 엿보인다. 운동만큼 게임도 잘하던 중식이는 뭐든 꼼꼼히 하나씩 쌓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아침마다 천천히 옷매무새를 다듬고, 매일 새롭게 방 정리 정돈을 하면서 미래를 차분하게 꿈꿀 수 있었겠지.



중식이는 운동을 꽤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 태권도, 축구, 킥복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격투기 대회에서 최우수상도 거뜬히 탈 정도였다. 장래희망도 자연스럽게 경호원으로 굳어졌다. 꿈이 생기니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수학여행 다녀와서 국민대 경호학과를 목표로 더 열심히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부모님께 전하기도 했다. 좋은 일장으로 소문이 날 정도로 몸을 잘 썼지만, 유독 ‘진짜 진짜 착했던 중식이’에게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경호원이란 직업은 얼마나 딱 맞는 일이었을까. 중식이가 좋아하는 일을 향해 꾸준히 달려갔을 하루하루의 일상들을 먹먹하게 그려 본다.
중식이가 가장 아끼던 컴퓨터가 있는 이 방에서 가족들은 2014년에 멈춰버린 중식이의 일상과 함께 살아간다. 책상에는 여전히 고등학교 2학년 교과서와 2014년 4월 14일 단원고에서 배포한 수학여행 사전교육 통신문이 놓여 있다. ‘만약’이란 말이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단어가 될 때가 있다. 만약 그때 중식이가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다던 특성화고에 가게 놔뒀다면 어땠을까. 바보처럼 유난히 너무 착했던 아들과 다시 밤길에 슈퍼 가는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었을까. 뭐든 잘 먹고 좋아하던 중식이 입에 육회, 불고기, 제육볶음. 멸치, 무말랭이, 겉절이, 만두를 다시 넣어줄 수 있을까.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이 원망스럽게 놓여있는 책상을 바라보며, 수학여행 가는 날도 욕심도 없이 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던 중식이의 의젓한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가족들은 중식이와 끝내 맺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 방에서 계속 이어나간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자동차 타이어 두 개로 만들어 놓은 선반. 그 위에 놓인 가족사진과 지갑, 손목시계, 차 키, 성경책 … 중식이가 어른이 되면 꼭 타고 싶다던 제네시스 차. 배 안에서 침착하게 기도하는 옆 모습으로 남아있는 중식이의 얼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어느 날 낡은 아빠 지갑을 발견하고 용돈 15만 원을 헐어 지갑을 사 왔던 중식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호기롭게 엄마에게 건네던 말. “엄마 지갑은 내년을 기대하라고!” 당연한 줄 알았던 내년이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중식이가 미처 전해주지 못한 선물을 한땀 한땀 바느질로 수 놓아 만든다. 꼼꼼한 아들이 이 지갑을 보며 잠시라도 마음을 놓고 안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