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영이의 방

어느 하나 여고생 취향이 아닌 것이 없다. 핑크빛 이불 위로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곰인형, 침대 머리 위부터 방안 가득 빙 두른 인피니트와 B.A.P 사진들, 책장을 채운 교과서와 문제집. 이것들이 모여 “난 정말 상큼 발랄한 고딩이라고요.”를 외치는 것 같다. 중학교 수련회에서 춤을 추고는 그 후로도 계속 춤을 췄다는 세영이는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이 좋아서 한문 선생님을 꿈꾸고, 안산으로 이사 오기 전 화성에서 좋아하던 오빠를 따라 한국체대에 입학하고 싶었단다. 뭐든 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꿈꿀 수 있는 나이였다. 18세 소녀를 증명하는 아이템들로 가득한 세영이의 방은 아직도 허전하지 않다.
많지 않지만 문제집 옆으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시집과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책들은 세영이가 문득문득 어디에다 마음의 시선을 던졌는지 짐작하게 한다. 빡빡하게 흘러가는 학업의 시간 속에서 책은 잠시나마 마음의 휴식을 주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가리키기도 했겠지. 누구보다 말랑말랑한 감성의 소녀에게 이 책들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들은 세영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잘 알려준다. 작고 예쁜 것, 추억이 담겨 있는 것들은 세영이에게 소중한 물건들이다. 고생하는 아빠를 생각해 과외 선생님께 수업료를 깎아달라던 속 깊은 세영이의 내면에는 반짝이는 큐브를 돌리며, 비비탄을 쏘며 깔깔 웃어대는 어린 세영이가 살고 있었다.
세월호가 물속으로 사라진 후, 인피니트 콘서트는 언제였을까? 방문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책상 위에 놓인 플래카드다.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매일매일 손꼽아 기다렸을 텐데, 콘서트장에는 세영이와 친구들의 함성은 울리지 않았다. 2013년 생일이 마지막 생일이 될 거라고 세영이도 가족도 친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충분히 자기 나이를 즐기고 있던 세영이가 갑자기 하늘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하늘 천 땅 지’ 한문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세영이는 천자문의 제일 첫 단어인 하늘과 땅의 차이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하늘에서 아빠 엄마의 꽃으로 땅에 내려왔다가, 땅에서 다시 별이 되어 하늘로 간 세영이. 꽃이었던 세영이가 뿌린 씨앗들은 아직도 세영이의 방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데, 하늘의 별은 또 무슨 씨앗을 이 땅에 뿌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