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석이의 방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창문을 열고 즐거움이 묻어나는 고함 소리,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놀이터를 멍하니 바라본다. 빨강, 노랑, 초록으로 물든 나무들이 어느새 가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엄마는 ‘또 계절이 바뀌었구나’ 생각한다. 영석이는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엄마는 영석이를 부를 때, 이름보다 ‘이쁜 아들’이라고 더 많이 불렀다. 엄마에게는 딸 같고, 친구 같고, 애인 같은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영석이가 어릴 때부터 일을 하느라고 오랜 시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일 끝나고 집에 와 영석이가 침 흘리며 자는 모습만 봐도 너무 좋아서 얼굴을 비비고 엉덩이를 두들겼다. 자라면서도 서로 감추는 것 없이 털어놓고 함께 옷 사러 다니고 머리하러 다니고 영화 보러 다니는 살가운 모자였다. 그렇게 귀하게 여겼던 영석이가 떠난 후에 엄마는 이쁜 아들의 얼굴, 이야기, 추억이 담긴 것들을 방 안에 하나하나 모아두었다. 마치 박물관처럼.
영석이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밝고 유쾌한 아이였다. 그런 영석이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도 참 영석이다웠다. 첫 번째는 간호사 누나들이 예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석이가 가진 에너지로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다 보면 치료 효과도 절로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의사를 하는 건 어떠냐고 영석이에게 슬쩍 물었지만 영석이는 의사가 하는 일 보다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간호사가 더 좋다고 대답했다. 아빠의 기억 속에는 아빠가 무릎을 다쳐 병원에 2달 정도 입원했을 때 영석이가 학교 끝나면 병원으로 와 자신을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던 시간들이 선명하다. 같이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자장면도 시켜 먹고 했었다. 그때, 영석이는 아빠에게도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석이의 부모님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한 영석이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마저도 빼앗아 가버린 이 사회를 향해 아직도 묻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침대 위에, 마치 영석이가 자고 있는 것처럼 사진 위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영석이가 긴 잠을 자더라도 이 침대 위에서,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자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우리 ‘이쁜 아들’이 꿈에라도 매일 찾아와 한 잠 자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간절한 바람이 전해지는 방이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7권 中 ‘웃고 웃기며 사는 즐거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