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이의 방.

밝은 성격의 해인이는 친구가 많았다. 집이 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라 친구들도 자주 데려오는 편이었다. 해인이는 수업을 마친 오후 4시쯤이면 친구들과 함께 집을 찾았다. 아이들 손에는 저마다 먹을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해인이가 좋아한 것은 김치 사발면이었다.
해인이와 친구들은 빈 용기를 모두 깨끗이 씻은 다음 창가에 올려둔 채 야간자율학습을 하러 학교로 돌아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컵라면 개수로 그날 해인이 친구들이 몇 명 다녀갔는지 알 수 있었다. 봄날의 오후 4시, 함께 컵라면을 먹던 아이들은 대부분 세상을 떴다. 해인이 짝꿍 은화는 아직 진도 앞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아빠도 잘 챙기는 큰딸이었다. 해인이는 낚시를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1박 2일 낚시 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고, 아빠 혼자 갈 때는 직접 낚시 가방을 챙겨드렸다. 평소 해인이는 아빠의 이발한 머리가 좋다고 했다. 해인이를 기다리던 아빠는 딸의 칭찬을 듣고 싶어 진도에서 어렵게 이발소를 찾았다. 그러나 참사 4일째에 돌아온 딸은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