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현이의 방

단원고등학교에서 나눠 준 2014년 달력이 여전히 붙어 있는 세현이의 방, 언제고 이 방의 주인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책상 한 편에 놓인 검은 책가방을 메고 노란 명찰을 목에 걸고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설 것만 같다. 회계사를 꿈꾸던 세현이가 공부하고, 컴퓨터 게임도 하고, 머릿속에 이런 저런 고민들을 떠올렸을 책상 위에는 세현이 삶의 보석 같은 순간과 그때의 마음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세현이가 열한 살 때 받은 태권도 품증과 태권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에는 심사를 통과하고 느꼈을 뿌듯함과 늠름함이 느껴지고, 가족 나들이를 가서 여덟 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들에서는 즐거움과 다정함이 느껴진다. 또한 세현이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였던 할머니와 찍은 사진도 세현이 방 곳곳에 자리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 속에서 많이 웃고 때론 울기도 했을 세현이의 성장 과정이 증명사진으로 남아 있다.



세현이의 어머니는 러시아 사람이다. 세현이 어머니는 세현이가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셨다. 세현이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우연히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엄마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아빠가 전해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러시아라는 나라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세현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친구들 앞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세현이가 자라면서 오랜 시간 가지고 놀았을 크기도, 모양도, 재질도 제각각인 공들은 여렸던 소년의 말랑말랑했던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고 커졌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4월 15일 아침, 할머니는 세현이에게 “교복 상의는 수학여행 가면 짐 되니까 셔츠와 조끼만 입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세현이는 교복 자켓을 벗어 놓고 학교로 향했다. 할머니는 세현이가 떠난 지 1년이 넘도록 세현이가 두고 간 교복 자켓을 그대로 걸어 두고 한 번씩 입어 보면서 우셨다고 한다. 2014년에 멈춰버린 세현이 방의 달력처럼 할머니의 기억도 자꾸 그 날로 돌아가 세현이를 붙잡고만 싶어진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6권 中 ‘나타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