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수의 방

범수의 책꽂이 한 칸에는 영어사전이 꽂혀 있다. 범수는 다른 책들은 학교에 두고 다녀도 영어사전은 꼭 가방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영어의 기본템을 필수로 장착하고 다녔으니 영어가 제일 재미있는 과목이 된 건 너무 당연할 터. 기본에 집중할 줄 아는 범수는 큰 키에 한 체격 하는 든든한 아이였다. 태어날 때 몸무게 2.8킬로그램으로 신생아실 신세를 져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맞벌이하는 엄마가 바쁠 땐 아빠가 범수의 밥을 챙겼다. 여름에 학교 갔다 오면 냉장고 열고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었으면 싶어서 항상 먹는 것을 채워놨다는 아빠. 아빠의 떡국, 아빠의 유부초밥을 먹으며 튼실히 자랐을 범수를 보는 것처럼 책꽂이에 놓인 두 마리 소가 포동하니 흐뭇하다.


범수는 다섯 살 터울의 형이 있다. 형은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범수를 챙겼다. 동생 범수의 이름도 형이 지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형의 모든 것을 따라 했던 범수가 일본만화를 좋아하게 된 것도 형의 영향이다. 태권도도 같이 가고, 캠프도 같이 가고, 신발을 사고 옷을 사도 함께 갔다. 하지만 범수가 따라갈 수 없었던 한 곳, 형이 군대를 갔다. “나 애니메이션 봐야 돼.”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일이 애니메이션 뒤로 밀렸지만 형의 면회를 갈 때만은 예외였다. 범수에게 형은 언제나 1순위였다.


가족들의 예쁜 막둥이, 범수의 방에는 범수 사진이 없다. 보면 생각나니까. 영정사진은 보자기로 싸서 두고 범수와 관련된 거는 서류봉투에 담아 두었다. 그래도 손재주 좋은 범수가 특기적성 시간에 만들어 온 ‘샤방샤방’ 거울과 ‘사랑해’ 메모판을 집안에 걸어두었다. 아이가 쓰던 문구류를 잘 모아두었다. 하지만 어느 날에는 그 물건들을 버렸다. 배에서 나온 아이의 유품도 소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아이가 입었던 티셔츠를 꺼내 입어본다. 범수의 손을 탔던 물건, 모든 흔적 앞에서 가족들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그리움을 피할 수 없다. 보고 싶은 마음을 다 펼치지도 못해 안쓰러운 범수의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