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방

아침밥 뜰 때 되면 밥공기가 네 갠데, 세 개밖에 사용 안 하는 것도, '분명히 네 개 떠야 하는데 왜 세 개밖에 사용이 안 되는가 생각할 때도 그렇고. 지혜 거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거든요. 옷 같은 거도 박스에 담아 넣어놓고 방도 손 하나 안 댔어요. 아빠는 책꽂이 같은 거 필요 없으면 버리자 하는데. 아직까지는 손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시험 봤는 거. 이렇게 사이사이 끼워놓는 그대로 냅뒀어요. 될 수 있으면 사진을 안 보려 해요. 사진은 여기저기 갖다 놓기는 했는데, 피아노 위에고 안방이고 부엌이고 어릴 때 사진은 걸어놓긴 했는데 마주 볼 수가 없어요. 마주 보면은 '갔다'라는 걸 인정하게 되니까. 이렇게 스쳐만, 이 형태만, 거기 있다는 것만 느낄 정도로만 보지,
가만 생각해보면은 잠깐 있다 가려고 하는 아이 같은 느낌이... 고등학교 때 들어왔는데 애만 쳐다만 봐도 어딘가 날아갈 거 같은, 왜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저 아이가 어디 갈 거 같은 느낌, 그래서 한참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은 왜 그렇게 보냐면서, 어디 내놓기가 아까울 정도로 그때는 한창 피어있었는 거 같애요, 애가요. 그거 보면은 다 이게 때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잠시 17년 동안 내가 행복에 빠져가지고, 진짜 지혜 낳고는 되게 뭐라고 할까? 풀리기도 잘 풀리고요, 뭐를 얻은 거 같은 느낌 있잖아요, 내가 떠다니는 느낌이라 그럴까. 어디를 데리고 가도 자신감이 넘치고, 제가 숫기가 많이 없었는데, 어디 가서 말도 잘 못하고 이랬는데 그 애만 데리고 가면은 자신감이 넘치는 거예요, 어디 가서도.
저를 저희 엄마가 마흔둘에 낳아갖고, 늦게 낳았어요. 시골 노인네다 보니까 저를 예쁘게 키울 수가 없잖아요. 저는 남들이 머리 예쁘게 해갖고 다니고 학원 다니는 게 초등학교 땐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내 딸, 내 애만큼은 우리 엄마, 아버지처럼 그렇게 안 키우고 예뻐해 가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살아야지' 했는데…. 머리도 빨강 고무줄, 노랑 고무줄 이렇게 해가지고 해주고, 그거를 지혜도 너무 좋아하면서 어릴 때는 문화센터 같은 데도 엄청 데리고 다녔어요, 춤추고 이런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모든 게 나랑 너무 잘 맞았어요, 손발이. 내가 ‘아’ 그러면 걔가 ‘어’ 그럴 정도로, 너무 호흡이 잘 맞으니까 지가 맨날 “동반자, 동반자” 이랬거든요. '못 해줬다'라는 그런 거는, 후회는 없어요, 솔직히 우리 지혜한테는요. 그렇다고 누구 집처럼 부유하게 사줄 거 다 사주는 게 아니고 내 경제 안에서 애한테 사줄 거 사주고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안 해요. 그리고 둘이 너무 잘 통해서 지 기쁘고 나 기뻤으면 그것만 해도,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