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이의 방

햇볕이 막, 날이 참 좋은데 큰 평평한 바위가 있었어요. 근데 바위에 뱀이 이렇게 기어서 올라가는데, 주황색 뱀인 거예요. 주황색 예쁜 뱀인데 이제 검정색 반점이 있는 그 뱀이 이렇게 있는,너무 선명하게 그런 꿈을 꿨어요. 넓은 바위에. 그게 수진이 태몽. 누나들 여섯에 남편이 외아들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고모들이 (수진이를) 정말 너무 예뻐했어요. 조금만 울면은 서로 안으려고 하고 땅에 (내려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진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수진이 초등학교 때 통지표 오면 항상 용모가 단정하고 바르고 그래서 모범이 된다고. 학교 계단에 내려가면 ‘바른 모습의 아이’ 해가지고 수진이 모습이 걸린 적도 있어요. 양 갈래 머리 딱 따가지고 스커트에다가 입고 바르게 서 있는 거.
(아빠 회사의) 사택에서 우리가 살았었거든요. 지저분한 강아지가 있는데 (수진이가) 데리고 온 거예요. 집을 잃어가지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수진이가 키운다고. 목욕시켜서 데리고 있다가, 주인 찾는다고 아빠가 밑에 붙여놨더니, 주인이 한 이틀 만에 찾아갔어요. 수진이가 또 너무 속상해하고. 아이가 정이 많고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참 강했던 거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보니까 자기 일생, 일대기를 썼는데, 다 의사야. 서른 살에 결혼하고 이제 해외 봉사도 가고 뭐 그렇게. 나중에 노후에는 작은 시골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생을 마감하겠다.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제가 다니는 데는 노인복지관이라서 추석이나 명절 때 조금 어려우신 어르신들한테 배달을 해요. 우리 직원들이 (선물을) 만들어서 그걸 또 배달할 때 수진이를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고등학교 1학년 때는 (교회에서) 봉사단 고등부, 학생부 회장도 하고. 잘했던 것 같아요.
저희는 거의 모든 게 수진이 위주였던 것 같아요. 결혼하면 일단 처음에는 남편 위주였다가 그다음에는 큰 애 위주로 가요. 부모들이 기대도 많이 하고, 많이 기대기도 하고, 가장 정성도 많이 쏟고, 돈도 많이 들이고, 많이 가르치고. 그게 큰 앤 것 같아요. 수진이는 생선도 좋아했고요. 제가 김치 넣고 등갈비 해주면 갈비를 진짜 잘 먹어요.수진이는 요리도 엄마하고 했어요. 수진이가 4월달에 갔는데 1월달인가, 설날. 수진이랑 같이 약과도 만들고 그랬었어요. 뭘 하면 되게 야무지게 잘해요. 손끝이 야무지다고 하죠. 이 아이를 보내고 나니까 그런 거 같아요. 우리의 기억이 4월 15일부터 계속 되짚어가는 것 같아요. 4월 15일 날 어땠고, 4월 14일 날은 어떤 일이 있었고, 또 4월 13일 날은 이랬어. 계속 그것만 생각하게 되고. 그거에 대해서 가슴이 너무 아픈 거죠. 기억이 거기까지만, 아이에 대해서 거기까지만 기억이 되고. 그 이후의 성장에 대해서는 기억이 전혀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