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의 방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꽃

민지 방에는 유독 많은 식물이 있다. 책상과 서랍장 위에는 꽤 커다란 초록색 화분들이 줄 맞춰 서 있고, 책상 위에도 화병에 담긴 꽃다발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살아서 호흡하고 생동하는 식물들이 이 방에 가득한데, 민지는 벽 위의 사진과 그림으로만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주인이 사라진 방, 눈치 없는 화분들은 오늘도 새로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방에서도 살아서 숨 쉬는 것들은 계속 자란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것들이 있다. 엄마는 이 방을 쓸고 닦으며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민지가 평소 좋아하던 것들이 방에 가득해졌다. 파스텔톤 인형과 소품들, 좋아하는 비스트 앨범과 사진, 그리고 민지의 순간들…. 때론 엄마는 민지 방에서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딸을 기다린다.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은 한없이 깊어간다. 단 한 번만이라도 딸이 웃는 얼굴을 보고싶다. “다음에 꼭 한 번만 엄마 꿈에서 보자. 알았지. 우리 딸 잘 있는지 보고 싶어서 그래. 보여줄 거지. 엄마 기다릴게.” (엄마가 민지에게 쓴 편지 中)

1.7kg의 아기

민지는 늦은 나이에 결혼한 부모님이 어렵게 얻게 된 첫째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더 애틋한 딸이었다. 몸무게 1.7kg, 너무 작게 태어난 민지는 엄마 배에서 나오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기는 열흘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유독 많았다. 엄마는 경기 난 민지를 품에 안고 응급실로 뛰어가는 일이 잦았고, 세 살 때는 병원에 입원해 온갖 검사를 다 받으며 고생했다. 결국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민지를 임신했을 때 화장실에서 크게 넘어진 게 늘 마음에 걸렸더랬다. 하지만 민지는 그 뒤로 별 탈 없이 훌쩍 성장했고, 엄마는 그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의젓하게 커 준 큰딸이 그저 대견했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클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스럽게 보살폈을까. 사랑은 때론 기적을 만들어낸다.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남매

두 살 터울 남매는 신기하게도 유독 사이가 좋았다. 정혁이는 누나 민지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었고, 민지는 그런 남동생을 잘 챙기면서 놀아주곤 했다. 어릴 때 정읍 시골집에 가면 마당에 있던 고무통에 물 받아놓고 같이 신나게 물놀이를 했고, 둘 다 중학생이 됐을 때도 계곡에 놀러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장난을 치며 놀았다. 부모님이 바빠서 주말까지 일을 나가다 보니, 둘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이였다. 때론 컴퓨터를 서로 차지하겠다며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정혁이는 누나 말을 잘 따랐고, 민지는 그런 남동생을 잘 보살피고 챙겼다. 둘만 있을 때 민지는 동생과 함께 먹을 밥도 뚝딱 잘 만들어 주었다. 계란찜이나 계란말이, 김치볶음밥 등 점점 할 수 있는 요리도 늘어났다. 민지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야간자율학습 시작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와서 저녁밥을 직접 만들어 먹고 가곤 했다. 그때마다 정훈이도 껴서 밥을 같이 먹었고, 민지 친구들도 자연스레 동생을 챙겼다. 학교에서 10분 거리 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마도 혼자 있을 동생이 걱정돼서 민지가 생각해낸 방법이었을 거다. 당연히 친구와 같이 노는 게 더 좋은 사춘기 소녀가 남동생까지 신경 쓰고 배려하는 행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민지의 따뜻한 마음을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런 누나를 갑자기 잃게 된 남동생은 얼마나 깊은 상실감에 휩싸였을까. 생전에 누나와 용건만 간단히 적은 메시지만 주고받던 남동생은 그날 이후 누나를 생각하며 정성껏 편지를 쓴다. 누나와 함께 나눈 시간의 조각들이 모든 일상 속에 흩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면 산타로 분장한 학원 원장님을 보고 진짜 산타인 줄 알고 같이 좋아했던 일이 떠오르고, 학교 친구들이 형 누나 얘기를 할 때면 부러워진다. 무엇보다 혼자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면 옆에 있던 누나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정혁이는 누나가 좋아할 만한 분홍색 파스텔톤 편지지를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민지 누나와 자신을 닮은 토끼와 햄스터도 나란히 그렸다. 누나가 옆에 있었다면 남동생이 절대 쓰지 않을 말을 이제 정혁이는 또박또박 편지에 적는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

민지는 혼자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다녔다. 그곳에서 민지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어울리며 점점 활발해졌다. 특히 주일학교에서 만난 어린아이들은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 해도 민지에게 활력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민지는 행복했다.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민지는 가끔 안양에 사는 사촌 언니의 아들을 찾아가 놀다 올 만큼 아이들을 많이 좋아했다. 그런 민지가 장래 희망으로 ‘유치원 교사’를 꿈꿨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교회에 다니며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민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민지가 애용하던 장갑과 무릎담요처럼 민지는 드러나지 않게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에서 진짜 행복과 소명을 찾았던 민지의 마음이 어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날 받아주는 사람들

민지는 늘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던 아이였다. 웬만한 일은 다 양보하면서, 평소 싫다는 말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혹여라도 부모님께 부담될까 봐 브랜드 옷 한번 사달라는 말도 꺼내지 않던 딸이었다. 그런 민지도 친구들과 가는 수학여행이 꽤 설렜는지, 엄마에게 여행용 가방과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엄마는 민지에게 새 옷을 사준 후 이모 캐리어를 빌려왔지만, 핸드폰은 다음에 바꿔 주겠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민지는 좀 서러웠나 보다. 항상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삭여만 왔던 사람도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때가 온다. 민지도 아마 그날은 여러 가지 서운했던 마음이 쌓이다 터졌던 날이었나 보다. 아무 말 없이 방에 틀어박혀 아이돌 사진을 보며 눈물을 쏟았고, 퇴근하고 그 모습을 본 아빠는 그길로 바로 민지를 데리고 나가 핸드폰을 사줬다고 한다. 그토록 원하던 새 핸드폰을 손에 쥐었지만, 민지는 부모님께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했나 보다. 가족은 참기만 했던 민지가 유일하게 자기 욕심도 부리고 양보도 하지 않을 수 있던 편안한 안식처였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이해하고 받아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민지는 친구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나눠줄 수 있었다. 어떤 브랜드 옷보다 값지고 귀한 것들을 품고, 민지는 하늘에서 가족들을 지켜본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보다 더 큰 사랑의 마음을 꿈속에서라도 전하고 싶다. (참고문헌 : 416 단원고 약전 ‘빛과 소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