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의 방

작은 방, 너무 큰 빈자리

4녀 1남 중 넷째 딸이었던 지성이의 방. 대가족이 함께 살아서 짐이 많았는지, 방 한쪽 2단 행거에는 옷이 한가득 걸려있다. 창가에 놓인 작은 책상과 책장 자리를 제하면 바닥에는 지성이가 잘 수 있는 작은 공간이 간신히 나온다. 여기서 지성이는 시험공부도 하고, 화장도 하고, 전신거울 보며 옷도 입어보고, 잠자리에 누워 이어폰 끼고 좋아하는 팝송도 들었겠지. 7명의 가족이 함께 살다 보니, 어쩌면 지성이는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했을 것 같다. 지성이가 머물던 방은 이렇게 작았는데, 활달했던 넷째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엄마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밥상이 텅 비어 버린 것 같고, 함께 어울려 시끄럽게 떠들던 집도 조용해진 것만 같다. 이젠 지성이가 언니와 춤 연습한다며 시끄럽게 틀던 음악 소리도 멈췄다. 가족들은 서로 돌아앉아 지성이를 잃은 슬픔의 무게를 홀로 간신히 짊어지며 어떤 시간을 버텨냈다.

누굴 닮아 이리 고울까

새까만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형, 강아지처럼 내려간 큰 눈, 오뚝한 코. 지성이는 커가면서 점점 얼굴이 눈에 띄게 예뻐졌다. 연예기획사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을 정도였다.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예쁜 딸이 우리 집에 왔을까?’ 생각했다. 지성이는 신기하게도 엄마 아빠의 우성인자만 빼서 만들어진 아이 같았다. 아빠를 닮아 키가 크고 날씬했고, 엄마를 닮아 얼굴이 고왔다. 엄마는 명랑하고 예쁜 지성이를 보고 있는 것만 해도 즐거웠다. 지성이는 엄마의 기쁨이자 큰 선물이었고, 가족들의 자랑거리였다. 지성이는 연예기획사에 합격한 적도 있지만, 스튜어디스가 되는 꿈을 갖고 있었다.

너무 일찍 철든 아이

지성이는 스마트폰을 쓰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2G폰을 썼다. 나중에 아빠는 언니를 통해 지성이가 2G폰을 부끄러워해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아빠는 지성이가 옆에 있을 때 원하던 옷과 핸드폰을 진작 사주지 못했던 걸 후회하며 가슴 아파했다. 지성이는 넷째였지만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해주시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던 철든 아이였다. 비행기 승무원을 꿈꾸며 영어학원을 다니던 때도 버스비를 아끼려고 추운 겨울밤 30분이 넘는 거리를 집까지 걸어올 정도였다. 부모님이 기꺼이 보내주신 영어학원 다니는 것조차 미안해했던 지성이의 속 깊고 성숙한 마음이 엄마는 대견스럽고도 아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부모님은 지성이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의 연락을 계속 받으며, 나중에 지성이가 얼굴만큼 마음도 참 아름다웠다는 걸 알게 됐다. 지성이는 친구들 이야기를 오랫동안 귀 기울여 들어주던 아이였고, 외로운 친구들의 손을 먼저 잡아주는 소녀였다. 친구들은 갑자기 지성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실감 나지 않는다. 지성이의 옛 사진을 보고 또 보고, ‘1’이 사라지지 않는 지성이 카톡으로 메시지를 계속 남긴다.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차오를 때면 지성이가 잠들어있는 수원 효원공원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한다. 지성이의 숨결이 남아있을 것 같은 교실 책상에 엎어져서 “너 가면 어떡하니. 나 친구 없는데….”라며 아프고 슬픈 푸념을 늘어놓고 오기도 한다. 지성이는 하늘에서도 그 메시지와 목소리들을 다 듣고 있겠지.

너의 체취가 그리워

지성이가 평소 집에서 입던 티셔츠. 엄마는 그 티 하나는 빨지 않고 따로 보관해놨다. 지성이가 살아있을 때 체취를 잊고 싶지 않아서다. 지성이가 보고 싶어지면 한 번씩 그 티를 꺼내 냄새를 맡아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옷의 체취가 사라지듯, 혹여 지성이를 담아둘 수 있는 시력까지 사라질까 봐 엄마는 때론 두렵다. “마음은 항상 너와 살고 있지만 너를 만질 수 없는 아픔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해버린 몸 때문에, 이제는 분향소 사진이 흐릿하게 보이는구나.” (‘그리운 너에게’中) 가끔 엄마는 꿈속에서 지성이를 만난다. 그런 날은 지성이가 더 보고 싶어진다. 엄마 꿈에 자주 나와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5년 전 팽목항 바닷가 옆에 차를 대고 잠을 자다가 지성이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때 “지성이 사랑해.”를 외치며 잠에서 깼는데, 그 말이 아이였을 때 지성이를 안고 항상 엄마가 하던 말이었다는 걸 깨닫곤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게 됐다. 그게 엄마가 지성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너는 나의 노란 꽃

엄마는 지성이를 생각하면 노란 장미가 떠오른다. 넷째 딸 지성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문 닫은 꽃집에 사정을 말하고, 노란 장미 네 송이를 엄마에게 건네줬다. 엄마는 그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지성이는 유독 노란색을 좋아했다. 특이한 노란색 조끼도, 바나나 우유도 그런 지성이의 노랑 사랑의 한 조각이었겠지. 지성이는 이제 노란 리본, 노란 나비, 노란 별이 되어 가족 곁에 있다. 지성이가 노란색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엄마 마음속에 지성이는 영원히 지지 않는 노란꽃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지금 매일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지성이와 친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아빠는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매일 카메라를 들고 그날 이후의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있고, 엄마는 4.16가족합창단에서 지성이를 떠올리며 남아있는 가족들을 돌보며 열심히 버텨내고 있다. 점점 말라가는 것 같은 아빠의 가늘고 긴 목에는 학생증 속의 지성이가 별빛처럼 아름답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