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이의 방

다빈의 방에는 창가로 향한 책상 좌우에 호위무사처럼 책장이 서있다. 책 한 권 골라 앉으면 엄마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빠져들었다. 시험 기간에도 보고 싶은 책을 먼저 읽어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년마다 독서상을 받는 것도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소설가가 되고 싶어졌다. 중학 시절에는 로맨스, 판타지, 추리소설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세로로 긴 공책에 손글씨로 소설을 써 내려가는 동안 창가로 향한 이 책상은 다빈이의 집필 공간이었을 것이다.
책상 오른쪽 책장에는 종이학과 종이장미가 담긴 유리병, 동대문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 만든 구슬 팔찌, 음악대회에서 받은 상패가 진열돼 있다. 책장 옆자리에는 디지털 피아노와 기타. 언제나처럼 엄마는 막내딸 다빈이의 야무진 솜씨와 재주를 그 방에 단정히 정리해두었다. 피아노 위에 쌓여있던 다빈이의 악보 대신 그 자리에 작은 화분과 다빈이가 좋아한 과자들을 놓았다. 성인이 되면 입버릇처럼 성씨도 개명하고, 읽고 싶은 책 마음껏 보고, 만들고 싶은 빵 실컷 만들고, 할 일도 많은 울 딸. 손재주가 좋아서 종이접기 매듭도 많이 했었는데. 악기도 잘 다루고 너무 좋아했었는데, 네가 좋아하는 피아노, 기타는 그대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단소 부는 것은 세상에서 울 딸이 최고였어. - <그리운 너에게> 엄마가 다빈에게 쓴 편지에서
찬찬히 방을 둘러보면 방 모서리, 다빈이 사진과 초상이 걸려있다. 동생과 싸우던 일조차 그리운 날, 언니는 여기 서서 다빈이 얼굴을 올려다보겠구나. 늦게 퇴근한 엄마를 위해 밥해놓고 유부초밥도 만들어 주었는데, 엄마도 방 모퉁이에 서서 다빈이 생각하겠지. 환하게 웃으며 캐리어를 밀고 가는 너의 모습이 아직도 엄마의 눈에 선하게 보이는구나. "엄마, 나 보고 싶어도 기다리고 있어." 하면서. 처음 가는 수학여행이었는데, "제주도 가면 초콜릿 많이 사 올게요." “딸이나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와라. 추억도 많이 만들고 재미있게 보내고 와라.” 했는데. 남들은 수학여행도 잘들 갔다 오는데, 울 딸은 처음 가는 수학여행이라 너무 긴 것 같아. - <그리운 너에게> 엄마가 다빈에게 쓴 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