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의 방

상호가 쓰던 물건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야구공, 글러브, 노트와 사진 정도가 전부이다. 가족 모두 상호가 떠오르고 상호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던 이유도 있지만 불교 신자였던 엄마의 뜻도 있었다. 물건을 버려야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아쉽고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상호는 알고 있을 것만 같다. 가족들 마음속에 언제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상호의 별명은 ‘오이’였다. 날씬한 상호를 보고 빼빼 말랐다며 동생들이 장난스럽게 지어 준 별명이다. 이에 질세라 상호도 두 살 어린 여동생에게는 ‘달걀’이라는 별명을, 다섯 살 어린 남동생에게는 ‘감자’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두 동생과 엄마는 상호가 열 살 때 새로 맞이한 가족인데, 상호는 갑자기 생긴 동생들과 관심 어린 엄마의 잔소리가 어색해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사이좋은 남매, 듬직한 큰아들의 자리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기념일에는 잊지 않고 케이크, 선크림, 목도리와 같은 선물을 건넸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동생들의 밥을 차려 주기도 했다. 상호가 떠난 후, 여동생은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원고에 진학했는데 오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고 있기에 져 줄 수밖에 없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엄마는 상호의 나가는 길을 배웅했다. 여느 날 아침에는 피곤해 통 웃지 않던 상호가 그날은 “다녀올게요”라고 말하며 활짝 웃어 엄마는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상호의 말간 웃음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이 엄마에게 슬픔을 가져다주기도, 위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워낙 꼼꼼해서 집안일을 시키면 설거지도 물기 하나 없이 해내고 싱크대에 음식물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정리하던 상호, 음식을 만들면 마지막에 간을 보고 맛있다고 칭찬해주던 상호, 기타를 독학해 가족들 앞에서 ‘캐논 변주곡’을 직접 연주해준 상호, ‘성우가 되어 볼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볼까?’ 미래라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찾는 중이었던 상호,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그러한 형용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아이 상호. 엄마의 바람처럼, 지금은 어느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나 그날의 웃음을 얼굴에 가득 품고 있기를.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7권 中 ‘희망이 있어서 더 아름다웠던 시절’) (참고문헌 프레시안 <이모에서 엄마 된 지 8년, 듬직했던 우리 큰아들…>, 201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