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찬이의 방

어렸을 때 아빠가 사준 인형, 껴안고 놀던 오랜 추억을 버리지 못해 의자에 기대두었다. 고1 때 배우기 시작한 기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빗길에 넘어지면서도 어깨에 메고 있었지. 아침에 등교하며 빼물고 가던 껌, 이제는 하나만 남은 껌도 그대로 있지. 그 방에 가서 누나도 한 번 자고, 엄마도 한 번 자고. 시찬이 세 살, 누나 네 살 때, 집 앞에서 놀던 남매가 사라졌다. 애타게 찾아다니는데 누나가 시찬이 손을 꼭 잡고 돌아왔다. 엄마는 동생을 놓치지 않은 누나가 대견했고 누나는 동생 손을 놓지 않은 스스로가 두고두고 고마웠다. 가족들이 시찬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꿀 것 같은 방이다.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수찬이 컴퓨터를 아빠가 켰을 때 ‘미스터 꽁꽁맨이 200일 넘게 접속하지 않았다’는 안내글이 떴다. 12월 8일생으로 겨울 아이였던 시찬이는 게임 아이디를 ‘미스터 꽁꽁맨’이라 지었다. 아빠는 항공정비사가 돼 비행기에 태워주겠다고 약속한 꽁꽁맨이 그립다.. "고1 때 늦가을에 처음으로 저를 업어줬거든요. 콧수염도 조금씩 거뭇거뭇해지고 남자다워지고. 그런 녀석이 아빠한테 와서 뽀뽀하자고 막 그랬었으니까. 수학여행 가기 전에 저랑 뽀뽀를 했다니까요. 우리 아들은 이제 꿈에 나와서 안겼는데, 사람 안기면 촉감이 있잖아요.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 꿈속에서도. 아들 특유의 체취 있거든요, 그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랬거든요. 그래서 꿈속에서도 서로 껴안고 뒹굴고.” -2015년 9월 1일, 시찬이 방을 안내하며 아빠가
왕따 당하는 아이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가 같이 왕따를 당하던 아들. 두통이 있는 엄마를 위해 손가락 지압점을 그려 냉장고에 붙여놓은 아들. 아빠 차가 우회전 횡단보도에서 일단 멈추지 않으면 난리를 하던 아들. 초등학교부터 수영을 배웠다.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구명조끼까지 입고 있었으니 가까운 섬으로 피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희망으로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 가까운 섬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던 그때처럼 시찬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기다리는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