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의 방

담비의 방이다. 하얗고 깨끗하고 정갈한 것이 담비를 많이 닮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똑 부러지게 해내는 아이가 담비다.



중‧고등학교 장학생에다 우리말대회와 논술대회의 최우수상을 따낸 담비는 변호사가 꿈이라고 한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보낸 편지를 보면 떡잎부터 알 수 있는데, 부모님께 감사한 것, 내가 노력할 점, 부모님께 전하는 요구사항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일목요연하게 쓰여 있다. 이렇게 논리적인 어버이날 편지라니……. 책장에 꽂힌 <상대를 움직이는 대화의 심리작전>이란 책을 보니 이상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담비가 또박또박 똑 부러지기만 한 아이라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심리작전 책 옆으로 보이는 치열할 정도로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작가들의 현대소설들과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는 주변인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지성과 감성을 두루 지닌 아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변호사를 꿈꾼 것도 소외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싶다는 것이니, 담비의 냉철한 이성 아래로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을 누가 끌 수 있을까. 배 안으로 차갑게 밀려드는 바닷물 앞에서 담비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가슴은 무엇을 외쳤을지. 책상 위에 쪼르르 앉아 있는 곰인형처럼 체온을 맞대고 의지할 친구는 있었을지. 모든 것이 다 궁금할 뿐이다.



볕이 잘 드는 담비의 방은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여기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진흙탕이다. 눈물이 차올라 하늘을 바라보면 거긴 또 참 깨끗하고 투명한데, “담비야, 거기는 어때?”라고 물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라고 대답해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