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이의 방

김영은의 방이다. 영은이의 방을 보면 가슴이 턱 내려앉는다. 영은이가 생활했던 방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로 둔 모습에서, 가족들이 아직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날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상처가 그대로 보이는 방이다. 자식을 잃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데, 피와 살을 다 쓸어가는 허망함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쓸어내며 하나하나 정리를 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면대 위에 아직도 치우지 않은 영은이의 칫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든 모를 리 없다.

영은이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쪽지에서는 소녀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접은 쪽지 안에는 친구와 나눈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접은 쪽지를 펴면 깔깔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봄날 벚꽃잎처럼 날릴 것 같다. 영은이도 여느 여고생처럼 연예인을 많이 좋아했다.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블락비의 피오, B1A4의 바로가 영은이가 꽂힌 가수들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때로는 콘서트에 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도 한 18세. 하루하루가 추억으로 남을 그 나이에, 오래 잊지 않을 추억을 만들고 돌아와야 했던 수학여행은 잔인하게도 영은이를 오래 잊지 못할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영은이의 엄마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엄마의 고향 나라에서 만들어진 지갑과 동전은 영은이에게 소중한 보물이었다. 아빠, 엄마, 언니, 오빠, 영은이. 다섯 가족이 모인 다복한 가정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위하며 살았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막내 영은이는 사려 깊은 아이로 자랐다. 아이들에게 늘 따뜻한 품이었던 아빠와 엄마, 동생의 수학여행비를 대주던 오빠, 친구처럼 지냈던 언니, 조금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스스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씩씩하게 해나갔던 영은이. ‘내리사랑’이라기보다 ‘서로 사랑’ 분위기가 충만했던 영은이의 가족들에게 영은이의 빈자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공백이다. 탁상 위에 가득한 영은이의 사진에서 영은이를 향한 짙은 그리움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