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혁이의 방

삼 형제가 시끌벅적하게 살던 집에는 이제 적막이 흐른다. 승혁이보다 세 살 많은 큰형은 군대에 갔고, 승혁이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별이 됐다. 승혁이와 같은 날 태어났던 쌍둥이 형 준혁이는 18살에 처음 홀로서기를 했다. 쌍둥이지만 유난히 우애가 좋았던 둘은 17년 동안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엄마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게임을 하고, 혼자 잠을 자던 준혁이를 보며 때론 승혁이를 봤다. 어릴 때부터 내려간 눈꼬리와 활짝 웃는 모습이 판박이처럼 닮았던 둘. 커서도 머리 모양과 표정까지 똑같아서 늘 세트처럼 함께였던 아이들. 쌍둥이여서 더 잘 보이는 빈자리 앞에서 엄마는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어릴 때부터 둘은 항상 단짝 친구처럼 붙어 지냈다. 엄마가 9시에 자라고 말하면, 곧바로 자리에 눕던 순하고 착한 쌍둥이였다. 옷도 똑같이 가지런히 개서 머리맡에 두고, 이불 속에서 소곤소곤 떠들다 잠이 들곤 했다. 정말 편한 잠옷처럼 옆에 있다는 사실도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사이. 그래서 승혁이는 억울하거나 서운한 일이 생기면 또 다른 자기였던 준혁이에게만 투덜거렸을지도 모른다. 언제라도 승혁이가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 운동복 갈아입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줄 것 같은 방. 가족들은 이 방에서 승혁이와 머리 맞대고 웃고 떠들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게 진짜 행복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책상에는 여러 명의 남학생이 승혁이 영정사진을 들고 찍은 이미지 사진 액자가 놓여있다. 보드에 ‘Don’t forget’이란 글자를 쓰고 입술을 다물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친구들 얼굴에는 당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빼앗긴 후, 뭐라도 말하고 싶었던 아이들의 결연한 슬픔이 담겨있다. 승혁이는 내향적인 성격이었지만, 친구들을 함께 붙어있게 만들던 잼 같은 아이였다. 외로웠던 아이들은 승혁이를 통해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승혁이는 혼자 노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주었고, 같이 놀던 친구들 그룹에 데리고 와서 함께 섞이도록 도와줬다. 원래 5명이었던 친구들은 승혁이 덕분에 점점 늘어났다. “친구를 많이 사귀게 해줘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혼자서 중학교 추억도 아무것도 없이 고등학교 올라갈 뻔했는데… 그냥 갑자기 먼저 다가와 줘서,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승혁아…” (승혁이 중학교 친구의 말) 친구들이 머물 수 있는 따뜻한 둥지 같았던 승혁이. 쌍둥이 집에는 승혁이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부모님이 없을 때 친구들은 햄과 음료수를 사 와서 승혁이네 김치와 밥을 이용해 음식을 해 먹었다. 승혁이는 자주 친구들을 불러서 소소한 요리를 해줬고, 친구들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이 친구들 무리에는 언제나처럼 쌍둥이 준혁이도 함께였다.

승혁이 책장에 놓인 햄스터 인형은 어쩐지 귀엽고 다정했던 승혁이를 닮은 것 같다. 실제로 승혁이는 참 애교가 많고 살가운 아이였다. 엄마가 마트에 가면 장바구니를 들고 따라나섰고, 아빠가 주말에 누워있으면 조용히 뒤에서 안아주곤 했다. 종일 몸 쓰며 일하고 온 아빠가 힘들어 보여 발과 어깨를 주물러 주던 아들이었다. 삼 형제 중에서도 승혁이는 유독 아빠를 잘 따랐고, 그런 막내가 귀여워 아빠는 집에 들어오면 승혁이부터 찾을 때가 많았다. 용돈이 모자라면 아빠 구두부터 닦아놓던 승혁이를 보면, 아빠는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센스있는 아들은 수학여행 가서도 전화로 “아빠, 선물 뭐 사갈까?”라고 묻던 다정한 아이였다. “그런 곳이 있으리라고 전 믿어요. 좋은 데 가서 있다가, 다음에, 이다음에 시간이 지나면 엄마 아빠가 거기로 같이 갈 거라고… 그럼 그때 꼭 만날 거라고.” 유독 정이 많던 승혁이를 보낸 후, 부모님은 남아있는 두 형을 지키기 위해, 먼 훗날 승혁이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열심히 마음을 다잡고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