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이의 방

은정이는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촬영해둔 영상을 보면 연년생 남매는 질투와 애정을 넘나들며 현실 남매의 케미를 보인다. 막 배밀이를 시작한 동생에게 관심이 쏠리자 오빠는 은정을 가리고 주저앉아 식구들 시선을 뺏는다. 그래도 오빠는 은정의 첫 생일 축하 초를 함께 끄고 은정의 첫 세배를 도와준다. 한발 앞서 크는 오빠 뒤를 따라 크는 은정의 느긋한 성장. 쑥쑥 자란 남매는 손잡고 마주 보며 엄마 아빠를 위로하는 노래를 부른다. 함께 자란 남매의 시간이 덧입혀진 가족의 초상화가 정겹다.
은정이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말보다 먼저 눈물이 흐르는 은정이가 엄마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울지 말라고 다그치는 대신 엄마 앞에서만 울라고 했다. 울보라고 놀림 받고 아이 마음이 다칠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맘껏 울게 한 엄마의 선택은 옳았다. 눈물은 자기 치유력이 있어서 실컷 울고 나면 아이든 어른이든 힘이 생긴다. 그 힘으로 은정이는 사춘기 시절 학교 친구들과의 불화를 잘 넘어갔다. 물론 현명하게 아이들의 갈등을 풀어간 담임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그 일을 겪으며 은정이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사귀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의 고민 상담도 척척 해줄 만큼 훌쩍 커있었다.
7시 기상, 줄넘기 500개, 저녁은 삶은 계란 2개, 은정의 계획 1이다. 스탠드에 다이어트 계획을 적은 쪽지를 붙여두고 실천했다. 은정의 계획 2는 쌍꺼풀 수술. 예약하고도 무서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쌍꺼풀이 생긴 눈은 너무 맘에 들었고 얼굴도 더 예뻐진 것 같았다. 달라진 내 얼굴, 염색약 모델과 닮은 것 같았다. 그 모델과 미모를 겨루며 염색약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책상 위에 그때 찍은 사진을 두었다. 은정의 계획 3, 약학과 진학이다. “수능 때 수학 1등급. 영어 1등급. 국어 1등급. 단원고 이과 전교 1등. 이화여대 약학과 합격.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정말 잘 볼 것.“ 십대의 마지막 목표였다. 영원한 열여덟, 끝내지 못하는 목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