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이의 방

아침이면 커다란 창으로 햇빛이 쏟아졌을 밝은 방, 따뜻한 느낌의 나무 무늬로 둘러싸인 방은 갈색 피아노와 잘 어울린다. 이 공간에 울려 퍼지던 음악들은 무엇이었을까, 피아노를 치던 소년은 연주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주인을 잃은 방을 보며, 우리는 그 눈부셨던 순간을 그저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당장이라도 손에 만져질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토요일, 정민이가 엄마의 복음성가에 맞추어 반주를 해 주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그런 부탁을 할 때 멋쩍어하며 거절하기 일쑤였지만, 그날은 엄마가 이것 좀 쳐달라고 하면 기꺼이 손을 움직였다. “정민아, 너무 좋다. 우리 또 이렇게 하자.” 엄마의 그 소박한 바람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정민이는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때부터 꾸준히 피아노를 쳐 왔던 정민이는 만약에 자신이 아빠가 되면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밀어줄 거라고 얘기할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했다. 방에 피아노를 넣어달라고 한 것도 정민이었다. 정민이가 떠난 이후, 교회 중‧고등부 반주자의 빈자리는 중학교 1학년이 된 동생이 채워야 했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정민이는 엄마 옷, 아빠 옷을 같이 입었다. 어느 날, 엄마의 청바지가 없어져서 찾아보면 정민이 방에 있기도 했고, 방 청소를 하다가 발견한 조그만 보석들이 정민이가 엄마 바지를 입기 위해 뒷면에 있는 큐빅을 뜯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정민이는 흰 양말 신는 것을 좋아했는데, 여기저기 활발히 누비고 다니는 아이의 양말이 으레 그러하듯 군데군데 검어져 깨끗이 빨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정민이에게 회색 양말을 신으면 안 되겠냐고 권하면서 양말을 여러 켤레 사다 주었는데 정민이는 그 양말을 다 신지도 못하고 떠나 많이 남아버렸다. 엄마는 여전히 정민이가 남긴 옷을 입고 양말을 신는다.
정민이는 2학년 7반의 부반장이었다. 반장인 수빈이와 5표 차이로 부반장이 되었다. 수빈이와 정민이는 수학여행 다녀와서 7반을 멋진 반, 공부하는 반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고 나름대로 계획도 세워 봤다고 한다. 사고 이후, 평소 과묵한 성격이라 엄마에게 직접 전하지 않았던 정민이 이야기들이 엄마에게 들려왔다. 차분한 줄만 알았던 정민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선율로 기억되는 아이, 수학여행 가서 선보일 춤을 즐겁게 연습하는 아이, 중앙동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며 걷는 아이였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7권 中 ‘너를 통해 보는 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