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현이의 방

자유로운 영혼의 창현이에게 어울리는 세계지도 벽지 위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창현아 사랑해”라는 글자. 그 아래 창현이의 다양한 청소년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하트 모양으로 콜라주 되어 있다. 친구들과 장난치는 창현이, 캠핑장에서 요리를 하는 창현이, 아빠 팔베개를 하고 잠든 창현이, 세월호 갑판에서 절친들과 들떠있던 창현이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중2 때 육상을 그만둔 이후 창현이는 좀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들이 나쁜 친구들을 만날까 봐 잔소리가 심해졌고, 그럴수록 창현이와의 관계도 조금씩 틀어졌다. 창현이가 친구 코뼈를 부러뜨렸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거나,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당시 부모 속은 문드러졌다. 엄마가 창현이의 모습을 새롭게 다시 보게 된 건, 아들을 하늘로 보낸 후 친구들을 챙기면서부터다. 창현이가 아니었으면 학교를 그만둘 뻔했다는 친구들이 나타나 집 문을 두드렸다. 창현이가 말려서 그만두려던 학교를 계속 다녔다는 아이, 창현이의 다독임 덕분에 다시 학교로 돌아온 아이도 있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단 한 명의 사람만 있어도 삶을 꽉 붙잡을 수 있는 시기, 창현이가 건네주던 편견 없는 우정에 기대어 친구들은 폭풍 같던 한 시절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책상 위 벽 걸린 가족사진. 어느덧 아빠 키만큼 자란 창현이가 엄마 어깨에 손을 올리고 듬직하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2013년 12월 말에 벼르고 벼르다 창현이가 겨우 시간을 내서 함께 찍을 수 있었던 가족사진은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뒀다. 신기하게도 그해 겨울에는 오랜만에 가족여행도 함께 가서 괜찮은 가족사진도 몇 장 더 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창현이가 멀리 떠나기 전 가족들에게 남긴 선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스친다. 돌아보니 창현이는 원래 츤데레 스타일이었다. 엄마는 혹독한 사춘기 시절에 가려져 잊고 있었던 창현이의 다정한 면모들이 이제야 하나둘씩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아들은 속정이 깊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반려동물 밥 안 준 게 생각나 집에 들어오던 아이. 오래 기도하던 엄마의 무릎이 걱정돼, ‘방석이 많이 비싸더라도 엄마 무릎 밑에 얹고싶다’는 시를 쓰던 12살의 창현이, 파지 줍던 할아버지 리어카 밀어줬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뿌듯해하던 고등학생 창현이… 조각 조각난 기억을 이제야 다시 맞춰보니 창현이는 한결같이 선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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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현이 교복이 걸린 단출한 옷장. 시간이 흘러 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은 군대도 다녀왔는데, 창현이는 영원히 교복을 입은 까칠한 고2 소년으로 남아있다. 롱패딩이 유행인 해, 엄마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서너 명씩 무리 지어 떠들며 지나가는 모습에서 창현이를 발견한다. “우리 창현이도 입으면 잘 어울릴 텐데” 함께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것들은 그저 기나긴 후회로 쌓여간다.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다가 헤어진 게 제일 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그래요” 수학여행 전날 창현이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친구한테 옷을 빌리러 가겠다고 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무슨 옷을 빌리냐며 아들을 말리다가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런 상태로 아침에 차를 태워 수학여행에 보냈다. 풀 죽은 채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멀어지던 뒷모습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게 엄마는 늘 마음에 걸렸다. 그날 밤 창현이가 친구한테 빌린 아디다스 운동복을 미리 사줬더라면 어땠을까. 수학여행 가던 아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었을까. (참고문헌 <금요일엔 돌아오렴> ‘맨날 잔소리해서 가깝게 못 지낸 게 제일 후회스럽지’)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5권 中 ‘바람처럼 빠르고 햇살처럼 따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