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이의 방

“세월호 타기 전날 엄마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뽀뽀하니 니가 ‘안돼! 개기름 쩔어’ 그랬지. 그 목소리가 마지막일 줄이야.” (‘그리운 너에게’ 中) 홍승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두 주 동안 엄마와 함께 잤던 거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된 동생이 컴퓨터가 있던 방을 차지하자 홍승이는 순순히 쫓겨나 엄마와 거실에서 같이 잠이 들었다. 엄마는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침에 뽀뽀해주면 가만히 웃으면서 누워있던 아들의 눈매와 입꼬리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엄마가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고, 업어 달라고 하면 업어주던 아들. 엄마 말이면 뭐든 거절하지 않고 해주던 홍승이를 오늘 밤 꿈에서 만날 수 있을까. 홍승이는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던 아들이었다.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일단 엄마에게 털어놨다. 엄마는 전적으로 완벽한 홍승이 편이었다. 나쁜 아이들이 홍승이를 자꾸 부르거나 부당한 일을 시킨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몇 달간 회사를 쉬면서 홍승이를 지켰다. “엄마가 너 지켜주지. 목숨 걸고서라도 지켜주지.” 츄리닝을 입고 단호한 표정으로 학교 앞에 서 있던 엄마는 어떤 영웅보다 든든해 보였다. 엄마의 용기와 담력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걸까. 홍승이도 후배들 돈을 뺏는 학교 일짱 형을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용감해졌다.

장식장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마련된 홍승이를 위한 자리. 영정사진이 되어 버린 학생증 사진 주변으로 평소 홍승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놓여있다. 콜라, 바나나 우유, 귤, 모자… 가족들은 매일매일 이 집에서 홍승이와 함께 살아간다. 짙은 색 뿔테 안경을 낀 홍승이가 조금 어색하게 입을 다물고 카메라를 바라본다.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던 홍승이는 단점을 커버하려고 알 없는 안경을 사서 끼고 다녔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 때문에 선배나 친구로부터 자꾸 오해를 받자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뿔테 안경 디자인을 보면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홍승이의 취향을 짐작하게 된다. 사진 옆에 놓인 호랑이 무늬 모자. 홍승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소화하기 힘든 과감한 패션을 선호하던 아이였다. 옷에 관심이 많았던 홍승이는 패션에 있어서만큼은 남보다 앞서가고 싶어 했다. 모자 하나를 사도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는 상품을 직수입해서 샀고, 아이돌이나 입을 것 같은 고무 재질로 된 옷도 편안하게 입고 다녔다. 독특한 디자인의 옷을 사서 어울리게 코디해 입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쩌면 패션은 홍승이의 정체성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안에서도 30분마다 옷을 갈아입던 홍승이는 얼마나 제주도 수학여행을 기다렸을까.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던 홍승이가 미용학원에 다니면서 사용하던 메이크업 박스. 자격증 실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홍승이가 매일 붙잡고 연습하던 커다란 메이크업 박스가 이제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놓여있다. 친구 재영이의 제안으로 함께 미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홍승이는 자신이 꽤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길어야 두세 달 다니면 학원을 옮기던 홍승이가 미용학원은 어느덧 9개월째 다니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홍승이의 특성과 잘 맞는 일을 찾았던 것 같다. 홍승이는 대학 갈 때 도움이 된다는 두 개의 자격증 중 한 개를 이미 통과하고, 수학여행 다녀와 나머지 자격증을 따려고 이론과 실기를 공부하고 있었다. 실기는 남동생과 엄마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동생을 눕혀놓고 얼굴에 다양한 화장을 연습해 봤고, 엄마의 긴 머리를 계속 자르며 연습하다 단발까지 만들어 버렸다. 거실에는 홍승이와 함께했던 시시콜콜한 모든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홍승이는 평일에는 밤 10시까지 미용학원에 다니고, 주말에는 헤어샵 알바까지 하는 고된 일상을 살았지만, 친구들과 집까지 1시간 반을 걸어와도 쌩쌩한 청춘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표현을 하진 못했지만, 아마도 홍승이의 모든 시선 끝에는 엄마가 있었을 것이다. 비싼 학원비와 재료비를 부담하면서 자신을 믿고 전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엄마, 흡연 문제로 학교에 불려갔을 때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많이 울었던 엄마, 길에 어른들이 지나가면 담배는 꼭 꺼야 한다며 청량리에 있는 금연학교까지 함께 가주던 엄마. 자격증 시험에 붙으면 가장 기뻐할 엄마를 떠올리며 홍승이가 노력하고 애쓰던 모든 시간이 담긴 메이크업 박스가 유독 더 쓸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