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의 방

민규는 이 집을 정말 좋아했다. 집을 지을 때도 와서 봤고, 야자 끝내고 엄마와 핸드폰 조명을 켜고 집을 구경하기도 했다. 혼자 와서 이 집을 보고 간 적도 있다. 수학여행 다녀와서 이사 오기로 예정돼 있던 이 집에 민규는 살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방의 가구들과 수족관의 위치는 모두 민규가 지정해준 그대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일까. 민규는 금요일 밤만 되면 엄마 꿈에 자주 나타난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서 어려운 영어공부를 하고 있고, 하루는 “엄마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꿈에 우울해 보이던 아들은 “엄마가 우울하잖아. 엄마가 슬프잖아”라며 품에 꼭 안아준다. 하루는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처럼 깨끗한 옷에 까만 우산을 쓰고 나타났던 민규, 어쩐지 정을 떼려는 듯 무서운 얼굴로 찾아왔던 아들. 삶의 희망이자 활력소였던 아들은 여전히 이 집에 찾아와 엄마를 돌본다. 종일 아들을 생각하며 밥을 먹다가도 울컥해 밥알도 넘기지 못했던 엄마 곁을 지킨다. “엄마가 웃어야 나도 웃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만 울어.”

민규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영화를 보고 오면 엄마를 붙잡고 얘기를 다 해주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주말에도 침대에 같이 누워서 밤새 이야기를 하다 잤다. 앞으로 인생계획, 여자친구 얘기, 학교 동아리 얘기, 친구들과 놀러 갔던 대학로 얘기…. 엄마는 뭐든 숨김없이 말하던 아들의 수다를 통해 밝고 짓궂던 민규가 인성도 참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았다.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싫다고 말하던 민규. 동아리에 지원한 후배 중 누군가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고민하던 아들. 엄마는 민규와 끝없은 수다를 이어가던 행복한 순간들을 모두 기억한다. 민규는 참 다정다감하고 센스있는 아이였다. 엄마가 라디오를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와서 곡 이름을 물어보면, 어느새 핸드폰에 그 노래를 다운받아 주곤 했다. 밖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엄마 팔짱을 꼈고, 길을 걸을 땐 항상 차도 쪽으로 걸어갔다. 시장을 같이 보러 갈 땐 엄마가 짐 하나도 절대 못 들게 했다. 가끔 우울해 보이는 엄마 기분을 풀어주려고 스마트폰으로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던 아들. 민규는 외모만 아이돌처럼 멋있었던 게 아니었다. 속마음과 행동이 더 멋있던 소년이었다.

민규는 물고기를 좋아했다. 수족관 세 개에 40~50마리의 물고기를 키울 정도였다. 엄마 손이 안 가도록 물고기 밥도 잘 챙겨주고, 수족관 청소도 하고, 새끼가 태어나면 따로 잘 옮겨서 키웠다. 인터넷으로 물고기가 좋아하는 먹이도 분석해서, 지렁이를 으깨는 수작업을 하며 먹이를 따로 만들었다. 좋아하는 물고기를 사러 친구와 청계천까지 다녀오는 것을 특별한 여행처럼 즐겼다. 물까지 가득 넣어서 무거운 물고기 봉지를 가방에 메고 대중교통을 타고 오던 민규의 설레는 미소가 어쩐지 상상이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민규는 제일 먼저 수족관 앞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야, 너는 엄마보다 물고기가 더 좋냐?”며 슬쩍 서운해하면, 민규는 기가 막힌 비유로 엄마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물고기를 생각하는 거야. 엄마, 비교할 걸 비교해.”

민규가 아기였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조그마한 베개, 고등학생이 된 민규가 보풀이 많이 생길 정도로 자주 입었던 옷, 그 사이에 민규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짧았던 생, 엄마 곁에서 항상 예쁜 짓만 골라 하던 아들은 뭍으로 다시 돌아올 때도 엄마를 많이 생각하던 효자였다. 2014년 4월 21일, 엄마들과 배를 타고 사고해역에 나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몇 시간을 소리치고 울고 왔던 날, 엄마는 체육관에 돌아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짐을 쌌다. 어쩐지 민규가 나올 것 같았다. 다음날 엄마는 팽목항에서 체육관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보낸 후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와 남자아이가 올라왔다고 했고, 그 아이가 바로 민규였다. 아들은 잠자는 듯 깨끗한 모습으로 나왔다. 그런데 눈 밑이 파랬다. 민규는 화가 나면 항상 눈 밑이 파래졌다. 엄마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팠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6권 中 ‘이제 그만 울고 웃어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