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의 방

동생과 같이 쓰던 은지의 방이다. 동생과 나란히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을 은지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은지의 책상은 은지를 기억할 수 있는 사진과 소품, 친구들이 준 편지와 선물로 가득하다. 은지를 떠난 보낸 아픔이야 무엇으로도 상쇄할 수 없겠지만, 책상 앞에 앉아 아이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잠깐이라도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은지에게는 동생이 한 명 더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수술 등 병원의 신세를 많이 진 남동생이다. 은지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만들기에 재능이 많았지만, 동생과 같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했다. 의지와 신념이 강한 것은 부모님을 닮았다. 은지 부모님은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끝까지 아이를 지켰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에도 헌신과 사랑으로 남동생을 돌보았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큰 딸이니 의지가 굳고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신념이 강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은 깊이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나아가기로 마음먹은 것들을 자신에게 설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온당하다고 인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이런 부류인 사람들이다. 정갈한 글씨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은지의 일기장. ‘지성이면 감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같은 문구로 시작되는 일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고생이 쓸만한 하루하루의 일상이지만, 순간순간 느끼고 사유한 것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곧은 복도 끝에 있는 은지의 자리다. 여기에 앉아 공부를 하고, 대학교에 가고, 꿈을 이루고, 혹시라도 다른 꿈이 생긴다면 단단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을 너의 길이 곧게 펼쳐져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길의 끝은 너를 건질 수 없는 차가운 바다였다. 네 인생의 종착역이 왜 그 바다였는지 이유를 설명해 줄 사람은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