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이의 방

맏딸 영란이를 하늘로 보낸 후 가족들은 이사를 갔다. 가족들은 그곳에 영란이를 위한 사각 장식장을 마련해 영란이의 유품들을 정리해 놓았다. 벽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초상화 밑으로 어린 시절 사진과 가족사진 등이 예쁜 액자 속에 곱게 담겨 있다. 평소 영란이가 착용했을 목걸이와 귀걸이도 가지런히 함께 놓았다.

영란이는 딸 셋인 집에서 맏딸이었었다. 옛말에도 맏이는 꼭 맏이 역할을 한다는 데 영란이도 그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바쁜 엄마 대신 밥을 짓기도 하고, 동생들도 잘 챙겼다. 애교도 많았지만, 가족들에게는 큰아들같이 든든하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큰 딸이자 큰 언니의 부재는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영란이의 물건들은 모두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이렇게 잘 정리를 해 놓는 것도 영란이를 생각하는 가족들의 마음이다. 때때로 가족들에게 영란이의 물건들은 영란이 대신이다. 정갈하게 모아 잘 간직하면 그 정성만으로도 영란이를 잃은 아픔이 조금은 달래질지도 모른다. 옷걸이에 얌전히 걸려 있는 교복과 체육복은 영란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까? 내일이라도 영란이와 함께 학교에 가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영란이는 수학이 좀 어려웠다. 스스로 수포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진짜로 포기하지는 않았다. 모든 과목에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란이는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동생들을 챙기던 습이 있어서인지 아이를 돌보는 일이 즐거워 보였다. 앙증맞은 체구에 맑고 명랑한 영란샘, 아이에게 뒷배처럼 든든한 영란샘을 상상해본다. 영란이는 평소 친구들에게 ‘평생 친구 인증서’를 만들어줬다고 하는데, 유치원 꼬마 친구들이 영란샘에게 ‘평생 친구 인증서’를 주면서 졸업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환한 미소로 눈물을 닦으며 아이들을 꼭 안아주는 영란이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영란아, 너를 그리워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네 손길이 닿았던 모든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어느 4월 봄날에 나비처럼 우리에게 날아와 준다면 좋겠다. 따뜻하고 평범한 어떤 날 고운 모습으로 너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