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이의 방

발차기 폼이 멋진 트로피가 나란히 놓여 있다. 민성이가 열 살 무렵 태권도대회에서 받아온 상들이다. 다섯 살이 될 무렵까지 말이 늦어 걱정이었다는데 민성이는 아마도 말보다 몸이 빠른 아이가 아니었을까. 운동을 잘하고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이미 태권도 유단자가 되더니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합기도, 킥복싱까지 관심을 넓혔다. 특공무술을 하는 특수부대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직업군인이 되어 “아빠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니 가족을 지켜주는 아주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었나 보다.


민성이는 근시가 심해 안경을 썼다. 민성이가 쓰던 안경들과 함께 놓인 스케치북에 낯선 숫자들이 그려져 있다. ‘128루트e980’, 숫자의 윗부분 반을 지우면 ‘I Love you’라는 글자가 남는다. 어느 가수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사랑 고백의 숫자이다. 아직 윗부분을 지우지 않아 고백이 되지 못한 스케치북의 숫자들. 민성이는 누구를 생각하며 고백을 준비했던 것일까. 열여덟 소년이 꼼꼼히 그려놓은 미완의 사랑이 누군가에게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제 가족들은 민성이를 꿈에서 만난다. 꿈속의 민성이는 엄마에게 밥을 지어달라 해서 따뜻한 밥을 먹고, 친구들과 한참을 놀다 가기도 한다. 학교에 가야 한다며 교복을 찾아서 이미 교복을 태워버린 가족들을 울리기도 했다. 이제 교복은 없지만 그래도 방에는 민성이가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다. 킥복싱 할 때 쓰던 글러브도 있고, 유니폼도 있고, 아령도 있다. 어린시절 갖고 놀던 유희왕 카드도 있고, 아빠에게 물려받은 전동 면도기도 있다. 민성이가 언제든 이 방에서 운동을 하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엄마 아빠를 만나고, 누나를 만났으면 좋겠다. 어서 와, 민성! 웰컴, 웰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