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의 방

책과 상상을 통해 만난 세계

책 읽기를 좋아하고, 생각이 깊었던 주희. 책상과 피아노, 컴퓨터, 작은 이불이 깔끔하게 정리된 이 방에서 주희는 그림 그리고 낙서하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곤 했겠지. 혼자 있는 것도 좋아했던 주희는 남들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자기만의 생각을 품고 있었고, 이 방은 주희의 상상들이 날개를 펼 수 있는 안식처였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았지만 주희는 세상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그런 착상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거다. 이 책상에 앉아 지구본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주희는 때론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했다. <망고 한 조각>을 보며 전쟁 한가운데 있는 소녀의 불안한 마음을, <파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보며 다른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나누는 신기한 우정 이야기에 푹 빠져 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주희를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주희는 현실을 뛰어넘어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몰입의 장인

주희는 어릴 때부터 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만들며 노는 걸 좋아했다. 색종이만 손에 쥐여 주면 혼자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곤 했다. 주희 손이 닿으면 놀이터도 예쁜 집도 뚝딱 만들어졌다. 유치원 때는 종이학을 마음껏 접으며 하늘을 훨훨 날아보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주희의 집중력은 어릴 때부터 타고났던 것 같다. 그런 성향은 자라면서 주희를 책과 더 가깝게 만들었다. 주희는 글쓰기도 좋아했고, 공부도 꽤 잘했다. 주희의 노트를 보면 주희가 공부하는 것도 꽤 즐겁게 했다는 게 보인다. 과학 시간에 나오는 RNA와 DNA 설명을 귀여운 캐릭터를 활용해 알기 쉽게 설명해 놨다. 그리고 노트 한쪽을 가득 채워 쓴 주희의 독서록을 읽어보면 이 소녀가 얼마나 삶과 인물을 깊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는지가 느껴진다. 한 사람이 가진 비겁한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동시에 이해하는 깊은 눈, 삶의 표면을 넘어 내면이 가진 문제점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이 이 글 안에 녹아있다. 소설 속 사물에 담긴 은유를 잘 포착하던 주희의 세심한 시선은 아마도 혼자 오래 몰입하며 생각하던 습관의 힘이었던 것 같다.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마음

외동이었던 주희는 오히려 혼자인 것이 익숙해서 평소에 어른들이 일일이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다. 딸 키워 보는 게 소원이었던 아빠는 늦은 나이에 가진 주희가 너무나 소중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아기 목욕을 직접 시켜줬다. 주희는 장난을 잘 치던 아빠와 있을 때 밝게 웃고 떠들었다. 그래도 아빠는 외동딸이 혹여나 의존적이고 버릇없이 자랄까 봐, 주희 아기 때부터 혼자 자는 연습도 시켰고, 어른들을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하도록 당부했다. 그래서였는지 주희는 어릴 때부터 응석 부리거나 떼쓰는 일도 드물었고, 무엇이든 혼자 알아서 잘하는 편이었다. 주희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고른 후 엽서에 쓴 내용을 보면, 이 동그랗고 귀여운 소녀 속이 얼마나 깊고 섬세한지 알 수 있다. 아빠가 장갑을 잃어버렸다고 엄마한테 하던 말을 기억해 두고 장갑을 골랐고,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시계 갖고 싶다는 말을 유심히 새겨듣고 용돈을 아껴 시계를 샀다. 선물 하나를 고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관찰하고 생각하는 주희의 마음결이 참 예쁘다.

내 꿈은 광고 카피라이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주희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와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새로운 직업이 주희의 눈을 끌었다. 광고 카피라이터. 재능기부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된 대학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던 중, 광고디자인 학과가 주희의 마음에 작은 불꽃을 일으킨 거다. 이 새로운 직업에 관한 얘기를 듣고 주희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모두 좋아하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찾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성장 과정과 가족 환경을 쓰라는 자기소개서 칸에도 주희는 자신이 어떻게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찾게 됐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적고 있다. 역시 글쓰기에 재능이 있던 주희가 쓴 글답게, 자기소개서에도 진로를 고민하는 주희의 솔직한 여정이 짧은 이야기처럼 담겨있다. ‘잠정 확실해졌다’던 주희의 장래희망은 그 뒤로 이 소녀의 일상을 더 부지런하게 바꿔놨다. 주희는 시간만 나면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렸고, 책을 보다가 좋은 문구가 나오면 꼭 노트에 필사했다. 낙서같은 그림과 메모가 적힌 공책들이 방안에 가득 쌓이곤 했다. 무엇보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삼성에서 제공하는 학업 장학금까지 받을 정도였다. 늘 현상의 다른 면까지 바라봤던 주희가 광고를 만들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취향과 마음을 공유하던 친구들

주희는 취향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중학교 때는 단짝 친구 유림이 소정이와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수다도 떨고 공부도 함께했다. 주희는 친구들을 위해서 주방에서 핫케이크나 과자 같은 간식도 척척 만들어줬다고 한다. 셋은 애니메이션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주희의 영향으로 어느새 모이면 같이 책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품 얘기를 하며 생각나는 이미지를 그리는 놀이를 하며 즐거운 추억도 쌓을 수 있었다. 주희는 가까운 친구들과 있을 때는 숨넘어가는 것처럼 잘 웃고, 생일 때마다 편지와 선물을 잘 챙겨주던 재미있는 친구였다.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지친 친구들을 센스있게 챙겨주던 주희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친구들의 편지 속에서 느껴진다. (참고문헌 : 416 단원고 약전 2권 ‘망고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