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의 방

준영이 방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있는 커다란 곰돌이 인형. 어쩐지 준영이를 닮았을 것 같은 곰 인형이 준영이처럼 운동복을 입고 팔짱까지 낀 채 편안하게 공간을 차지했다. 가족들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거대한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간신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구멍과 함께 살아가는 일뿐이다. 어쩌면 이 커다란 곰 인형은 준영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의 생존이자 다짐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곰 인형이 사람이 된다면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성격과 외모의 준영이.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 엄마를 가장 많이 안아주던 아들, 몸에 좋은 거 먹으라며 볶음밥을 해주던 오빠, 친구들 간의 싸움을 눈치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리던 친구… 준영이가 남긴 일화들은 준영이가 만든 ‘꿈돌곰돌’이란 별명처럼 다정하고 따스하다. 엄마는 4월 15일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다 돌아서 어깨를 꼭 감싸 안아주던 아들의 온기를 떠올린다. 아빠는 함께 목욕탕 가는 걸 제일 좋아하던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등을 밀어주던 추억을 떠올린다. 준영이 방에는 동생 민영이가 오빠 생일 선물로 사다 놓은 청바지가 그대로 쇼핑백에 담겨있다. 수학여행 떠날 때 새로 샀던 청바지를 입어 보지도 못하고 떠난 오빠를 떠올리며 뒤늦게 산 선물과 평범하게 적은 메시지. “To. 내 오빠. 늦었지만 생일 축하하고, 입고 싶었던 바지야. 거기서 잘 입고 좀 길면 그냥 접어 입어. 그리고 진짜 생일 축하하고 나중에 또 돈 모아서 많이 많이 사줄게.” 준영이는 ‘내 오빠’, ‘내 아들’로 여전히 가족들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간다.

책장 안에 차곡차곡 정리된 물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야구 관련 물품이다. 글로브, 야구공, 유니폼. 준영이는 야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팔 힘도 좋고 체격도 적당해서 한때는 야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오준영’이란 이름을 등 뒤에 달고 투수로 공을 던질 때, 내야수와 외야수로 구장을 누빌 때, 준영이는 얼마나 반짝거리며 빛났을까. 황토색 흙이 묻고 바닥이 헤진 흰색 야구화. 한 번도 뭘 사달라고 조른 적 없던 준영이가 유일하게 처음으로 사달라고 해서 사게 된 신발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십만 원이 넘는 가격이 부담돼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야구화를 사줬지만, 엄마는 왠지 걱정돼서 아빠한테 야구화의 존재를 거짓말로 둘러대자고 했다. 돌아보니 그런 순간들이 모두 엄마에겐 죄책감처럼 다가온다. ‘다음에 사줄게’, ‘다음에 놀러 가자’, ‘그다음에…’ 18살 아들에게 ‘그다음’이란 시간이 돌아오지 않게 될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준영이가 진심으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가족이지 않았을까. 곰 인형에 가족들 별명까지 만들어 주던 아이는 가족 반지와 가족 야구복도 맞춰 입자고 하는 애교 많은 아들로 자랐다. 준영이의 눈길과 관심은 항상 가족을 향해 있었다. 야간 일을 끝내고 새벽에 힘겹게 돌아오는 아빠를 볼 때면 안산의 아침이 슬프게 느껴졌고, 엄마가 음식 준비로 쉴 수 없는 명절은 성탄절보다 즐겁지 않은 날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후 퇴근하는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기 위해 몇 정거장 더 달려오던 길은 전혀 힘겹지 않았다. 따로 방이 있었지만, 안방 엄마 곁에서 잠드는 시간은 하루의 괴로움을 모두 잊게 되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큰딸처럼 다정하고 섬세하던 준영이를 떠올리며 물어본다. “왜 그렇게 엄마에게 잘해주었니?” 학교 다녀오면 교복 빨고, 청소하고, 세탁기 돌려놓던 게 당연했던 아이, 명절 준비하며 장 볼 때 따라다니며 무거운 짐을 다 들어주던 아들, 밥도 못 먹고 차례 준비로 바쁜 엄마 입에 몰래 밤을 넣어주던 준영이… 일상의 모든 시간 속마다 준영이의 그림자는 길게 닿아있다. 엄마는 가족들 곁에 언제나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준영이를 만난다. 그리고 꿈에서 만나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할 날을 꿈꾼다. (참고문헌 <416 단원고 약전> 5권 中 ‘안산은 아침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