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준이의 방

중1 때까지 해동검도를 꾸준히 배워서였을까. 석준이의 부드럽고 여린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고 듬직하게 변해있다. 아이는 어느덧 소년에서 청년의 모습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단란했던 네 가족은 이혼으로 변화를 겪었고, 동생 석훈이와 아빠 곁에 남기로 선택한 석준이도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으로 커 있었다. 대형트럭을 몰던 아빠는 새벽부터 일을 나갔고, 집에 들어오기 힘든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듬직하게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운 것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첫째였다. 석준이는 동생 석훈이를 돌보는 형이자, 아빠를 돌보는 아들이기도 했다. 학원 갔다 늦게 오는 동생이 언제 들어오는지 챙겼고, 아빠가 집에 오는 날에는 밥과 찌개를 미리 해 놓을 때도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세탁기를 돌리거나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치우는 집안일을 아무렇지 않게 쓱쓱 해 놨다. 아빠는 석준이가 끓여놓은 밥과 찌개를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석준이는 조용하고 따뜻하게 곁에 있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이였다. 석준이가 남몰래 품고 있던 마음 씀의 깊이는 어디까지였을까.

액자 안에 연필로 삐뚤빼뚤하게 쓴 편지, 털장갑 한 벌. 석준이가 한겨울 바깥에서 일하는 아빠를 생각하며 용돈을 모아서 선물한 장갑과 편지다. 어떤 말과 문장은 평생 마음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이 편지가 석준이 아빠에게는 그런 문장이 되었을 것 같다. “아빠 이 장갑 쓰세요. 스마트폰 장갑이에요. 엄지랑 검지로 핸드폰 터치할 수 있는 장갑이에요. 아빠 손 시리다고 하셔서 사 왔어요. 원래 가죽장갑으로 사려고 했는데 그건 너무 비싸서 그나마 조금 싸고 좋은 것으로 사 왔어요. 꽤 편할 거 같기도 하고요. 이제 일 나가기 전에 꼭 장갑 끼고 다녀오세요.” 간결하고 담백한 석준이 말투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아무 미사여구도 없지만, ‘일 나가기 전에 꼭 장갑 끼고 다녀오라’는 석준이의 말은 어떤 사랑 고백보다 깊고 섬세하다. 석준이는 세상 누구보다 아빠의 마음을 가장 많이 헤아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석준이를 이해하는 마음보다 나이 어린 석준이가 어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더 깊고 넓었다. 평소 사고 싶었던 것을 아빠한테 단칼에 거절당했을 때도 아빠를 위한 선물을 조용히 내미는 아이였다. 친구 엄마 가게에서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아빠가 입을 티셔츠를 두 장이나 사 오던 아들. 그날 조금 큰 아빠 옷을 교환하러 가던 밤, 석준이가 동생에게 건네던 말. “우리 아빠 너무 불쌍하지? 매일 새벽에 나가 일 나가시는 모습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 자기연민의 자리보다 소중한 사람의 고통 곁에 더 가까이 서 있던 아이. 석준이를 그리며 ‘헤아린다’는 말의 뜻을 오래 생각해본다.

석준이 방 한가운데 놓인 빨간 자전거. 2014년 4월 10일 석준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중고로 구매한 후 단 하루도 학교까지 타 보지 못한 자전거다. 석준이는 이 경륜 자전거를 정말 진심으로 사고 싶어 했다. 아빠에게 말 한마디조차 퉁명스럽게 안 하던 석준이가 두 번씩이나 반항기까지 비칠 정도면 갖고 싶었던 마음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된다. 석준이는 아마 비싼 자전거 가격 때문에 몇 번이나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말을 꺼냈을 테지만, 아빠는 20년 전에 당한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를 심하게 다친 이후 아들까지 혹여 그런 일을 겪을까 봐 겁이 나 강하게 만류했다. 그러나 아들의 열망은 부모의 막연한 두려움을 꺾을 만큼 강렬했고, 석준이는 알바로 번 돈 11만 원까지 보태서 아빠를 결국 설득했다. 수원에서 중고 자이언트 경륜 자전거를 가져온 날, 석준이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 다닐 생각에 무척 설렜다. 하지만 석준이와 매일 바람을 가르며 달렸을 자전거는 흙 한번 밟지 못하고 이 방안에 멈춰버렸다. 이 자전거에 쌓이고 쌓인 아빠의 한스러움을 석준이는 다 보고 있을까. 바람이 멈춘 곳, 석준이의 자전거가 하늘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