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이의 방.

종이와 연필은 하용이의 오랜 장난감이었다. 아이는 두 가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그림을 그렸다. 연습장이든 성적표든, 가정통신문이든 상관없었다. 하나둘씩 늘어가는 그림들 속에는 하용이가 하고 싶은 말과 이루고 싶은 꿈들이 콕콕 박혀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들을 들려줄 하용이는 세상에 없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을 모르던 아이였다. 열두 살 때 태권도를 시작한 하용이는 3단을 딴 뒤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그림도 그냥 그리지 않았다. 물고기에 푹 빠졌을 때는 해양 생태계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충분히 이해하고 난 뒤 물고기를 그렸다. 삼형제 중 맏이답게 속도 깊었다. 언젠가 하용이는 엄마에게 "한 마디 말이라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며 "말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책상을 나란히 두고 지냈던 막내 동생은 유독 형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모습이다. 엄마는 "막내가 요즘 하용이 컴퓨터를 쓰는데 잠을 잘 때까지 계속 세월호 참사 추모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듣는다"고 했다. 노랫말처럼 바람이 된 하용이는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