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의 방

예지는 어려서부터 받은 세뱃돈과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예지의 저축과 지출은 슬기롭고 지혜로웠다. 예지의 슬기로운 첫 지출은 피아노 구입이다. 당시 80만 원을 들여 산 피아노는 예지의 보물 1호가 됐다. 두 번째는 아빠가 차를 바꿀 때였다. 아빠에게 선뜻 목돈을 보탰다. 가장 통 큰 지출은 예지네가 집을 살 때였다. 10년 동안 모은 용돈 800만 원을 집 사는 데 내놓을 때는 고민도 좀 됐다. 하지만 가족의 보금자리 마련에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던 옛말이 예지를 두고 만든 말인 것만 같다.
집에서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는 맏이지만 학교에서 예지는 막냇사위로 불렸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멀리 배정된 중학교. 새 친구들을 사귀며 가족놀이를 시작했다. 8명의 친구가 8명의 가족을 맡았는데 그때 예지 역할이 막냇사위였다. 막내딸은 친구 현주가 맡았기에 둘은 ‘여보, 당신’ 하며 놀았다. 예지의 역할놀이는 학교 밖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는 문을 밀어젖히고 들어가며 애니메이션 주인공 엘사처럼 <겨울왕국>의 주제곡을 불렀다. 엄마를 닮은 유쾌한 성격에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빼어난 노래 실력이었으니 놀이공원에 온 사람들도 명랑 소녀 예지의 역할놀이를 즐기지 않았을까?
-2014년 나의 꿈 (1월 어느 날)- 2013년 살을 빼자고 마음먹었지만 사실 빼지 못하고 2014년에는 좀 더 열심히 살을 뺄 것이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양대 ERICA 캠퍼스 컴퓨터학과 들어가서 꼭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완전 절실하다! 꼭 열심히 해서 성적 올릴 것이다. 2014년 계획을 적은 예지의 메모 12월 9일은 예지의 생일이다. 2014년 12월 9일이면 예지는 친구들의 생일 축하를 받고 돌아와 1월에 계획했던 ‘나의 꿈’을 점검했을지 모른다. ‘완전 절실하다’는 예지의 꿈, 오래오래 응원받고 싶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