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민이의 방

먼지 하나 없을 것처럼 정갈하게 정리된 준민이의 방은 연둣빛과 파란빛으로 청량하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했던 준민 엄마의 애정이 이불깃 구석까지 따뜻하게 내려앉은 방이다. 이 침대에서 세상 모르게 자던 준민이를 엄마는 매일 아침 뽀뽀로 깨웠다. 10분 이상이나 걸려도 의식처럼 행해지던 뽀뽀 세례에 눈 비비며 일어나던 준민이는 이제 침대 위가 아닌 탁자 위 영정사진으로 남아있다. 준민이는 엄마 아빠가 결혼한 지 2년 만에 어렵게 얻은 귀한 아이였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었던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 준민이는 왕자님처럼 자랐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자랄 수 있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더 많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너른 품에서 준민이는 편견 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며 청소년다운 시절을 누릴 수 있었다. 준민이 동네 친구들까지 모아 매일 아침 차로 등굣길을 데려다주던 엄마는 지금도 가끔 차 뒷자리에서 울리던 남자아이들의 시끄러운 수다 소리를 듣는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튜디오에서 찍은 준민이의 어린 시절 사진들. 카메라를 보고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다채로운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는 훈훈한 외모의 어린이를 보고 있으면 왜 준민이가 어릴 때 연기를 했었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활동을 해서인지 준민이는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소품과 모자까지 제대로 챙기는 패셔니스타였다. 수학여행 갈 때도 코스에 따라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한다며 정장에 구두까지 구색 갖춰 챙겨갈 정도였다. 수학여행이 얼마나 기대가 됐는지 엄마의 만류에도 외할머니가 선물한 용무늬 금반지에 비싼 시계까지 몰래 챙겨갈 정도로 준민이는 패션에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독특한 반지가 136번째로 바다에서 나온 준민이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물건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책상에는 준민이가 패밀리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 갔다 찍은 단체 사진이 놓여있다. 좌우명처럼 청춘을 마음껏 즐겼던 준민이의 한 시절이 해맑게 담겨있다.
외출할 땐 팔짱을 끼라며 엄마 팔을 끌어가던 준민이는 마치 애인 같은 아들이었다. 엄마가 기분이 가라앉아 있거나 시무룩해 있으면 “왜 그래? 내 사랑”이란 낯간지러운 말도 자연스럽게 하던 아들이었다. 애교가 많고 수다스러웠던 준민이는 예쁜 말로 유독 표현을 잘하는 아이였다. “우리 엄마는 목숨보다 소중하다!” “힘이 들 땐 만능 준민이가 구해줍니다” 준민이의 강력한 사랑의 주문은 가족들의 삶의 활기였다. 평소 밖에 나와 있을 때도 연락을 자주 하던 준민이는 세월호가 기울던 아침에도 스무 번 넘게 전화를 걸어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엄마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그 통화가 아들과의 마지막이 될 거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136번째로 나온 준민이는 상처 하나 없이 자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누워있는 준민이 몸을 만지고 주무르며 볼을 비비며 깨웠다. “내 모든 걸 다 줄 만큼 사랑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 아들이 가장 좋아하던 말을 몇 번이나 되뇄다. “내 모든 걸 다 줄 만큼 사랑한다”고 똑같이 그 말을 돌려주던 준민이의 목소리가 더는 메아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족들은 안간힘을 다해 버텨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