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이의 방

행복의 주문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수경이는 지금 여기서 살아있는 기쁨을 매 순간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던 소녀였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누구보다 격하게 축하했다. 고민을 품은 친구 이야기에 오래 귀 기울였고, 어떤 상처든 큰 품으로 꼭 끌어안았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에게 ‘바람의 상처’란 주문이 있었다면 수경이에게는 ‘어깨춤’ 주문이 있었다. “누구든 널 괴롭히면, 내가 달려간다!” 그 씩씩한 큰 목소리에 친구의 걱정과 우울함도 어느새 바람처럼 날아갔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딱 한 명은 있다는 것. 이 말만큼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적 같은 주문이 있을까. 수경이는 때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마법의 눈빛으로 친구들의 삶을 붙잡아주던 아이였다.
<수경이와 소라 언니가 함께 쓰던 침실>

자매의 방

수경이가 언니와 함께 쓰던 방에는 작은 오디오 기기를 사이에 두고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함께 잠들던 열여덟 해 밤 동안 자매에게는 수많은 음악과 수다들이 있었겠지. 친구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 크고 작은 섭섭함과 고민들…. 그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었던 여섯 살 많은 소라 언니의 존재는 수경이에게 든든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손발이 유독 차던 언니의 손을 따뜻하게 녹여주던 수경이의 존재는 집안의 온기였을 거다. 언니는 지금도 옆 침대에 누워 이어폰 끼고 동영상을 보며 큭큭큭 소리를 내던 수경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함께 엽기 셀카를 찍으며 동네 맛집을 섭렵하러 다녔던 동생의 빈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밤, 동생이 몹시도 보고 싶다.
<수경이와 언니가 함께 쓰던 화장대>

머리 말리기 전쟁터

수경이가 아침마다 매일 오랜 시간 머리를 말리던 모습을 화장대 거울은 기억하고 있을까. 유난히 머리숱이 많던 수경이는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말리는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수건 세 장을 써도 물기를 닦아내기 힘든 머리 말리기에 선풍기와 드라이기는 물론 엄마까지 총동원됐다. 그래도 학교에 늦을까 봐 어쩔 수 없이 축축한 머리로 집 밖을 나섰고, 엄마는 젖은 머리를 털며 학교에 뛰어가는 수경이를 베란다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지금도 유독 숱 많은 소녀들의 뒤통수를 볼 때마다 엄마는 젖은 수경이의 머리가 떠오르겠지. 저 멀리 팔랑팔랑 뛰어가던 교복 입은 딸의 뒷모습이 떠올라 혹시라도 아이의 손자국이 남아있을지 모를 드라이기를 어루만지며 거울 앞을 서성이겠지.
<2011년 중3 수경이 생일에 친구들이 보낸 전지 편지>

생일의 긴 편지

수경이에게 생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각 방에 있는 달력과 교실 벽에 걸린 달력에도 자기 생일을 동그라미로 크게 표시해 둘 정도였고, 가족 생일은 물론 친구들 생일도 유독 살뜰하게 챙겼다. 친구들은 생일날 매번 수경이가 빼곡히 쓴 긴 편지와 과자를 선물로 받았고, 그 세심한 정성이 고마워 중3 수경이 생일날 즐거운 마음으로 긴 전지 편지를 꾸몄다. 귀여운 돼지, 참새, 곰, 펭귄 등 예쁜 그림을 찾고 오리고 붙이며, 신나고 들떴던 친구들 마음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게 많은 문장을 끝없이 적고 적어도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고마움을 다 담을 수 없어 안타까운 심경들까지 행간에 느껴진다. 수경이의 열여섯 살 4월의 생일은 친구들의 우정과 지지, 기쁨과 감동으로 꽉 차 있다.
<2층 다락방>

아지트 다락방

수경이는 집에 친구들을 자주 데려와서 놀았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즐겨 가던 아지트는 2층 다락방. 구석에 있는 침대에 자유롭게 걸터앉아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곤 했다. 가끔은 소라 언니가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줄 때도 있었다. 커다란 곰돌이가 머물던 이 비밀스러운 공간은 얼마나 친구들 마음을 설레게 했을까. 어른들 눈을 피해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 공간에서 잠시라도 아이들이 느꼈을 자유로움을 상상해본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까지 이 방에는 단원고 1반 ㅇ단짝 친구들(한고운, 김민지, 정가현, 김민희)이 몰려와서, 수학여행의 설렘과 흥분을 떠들썩하게 펼쳐놓고 갔다. “우리 왜 방이 다른 거야.” “점호만 끝내고 다 같이 구석 방에 모이는 거다!” 미처 수학여행 장소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멈춰버린 소녀들의 시간은 어디에 고여있을까. 그 소녀들의 깔깔깔 웃음소리가 다락방을 비추는 긴 햇볕에 닿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