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영화'란 무엇일까? '독립 영화'하면 아마추어 영화인들이 만드는 단편 영화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큰 돈 들이지 않은 '저예산 영화'를 떠올리는 이도, 혹은 '파업 전야'와 같이 현 체제를 비판하는 저항 정신 가득한 영화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개념 규정부터 쉽지 않은 한국 독립 영화판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11월 12일 오후 다섯 명의 영화 관계자들이 부산 국제 영화제에 모여 세미나를 가졌다.

참가자는 한국 영화 진흥 위원회 정책실장인 김혜준 씨,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제작과 배급을 맡았던 이진숙 씨, '고양이를 부탁해' 제작자인 오기민 씨와 한국 독립 영화 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조영각 씨를 비롯해 '사자성어'라는 영화의 프로듀서인 김일권 씨였다.

토론의 사회는 영화 평론가이자, 12월에 있을 한국 독립 단편 영화제 집행 위원장인 이효인 씨가 맡았다.

세미나의 제목은 '독립 장편 영화, 현실 그리고 대안'이었다. 이들이 굳이 독립 '장편' 영화라는 이름을 내세운 데에는 나름대로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조영각 씨가 언급했다시피, 현재 우리나라에는 단편 영화를 만드는 인구가 폭증해서 그의 말대로 '영화를 만드는 자체가 소비가 되어버린' 상황이 되었지만, 그 이상, 곧 장편 영화쪽으로 넘어가기가 힘든 게 또한 슬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장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무로에 가서 그 체제에 적응하지 않는 한, 자금도, 사람도 구하기 힘들다는 뜻이겠다.

말머리에 언급한 '독립 영화'의 개념 규정에 대해서는 김혜준 실장의 정의를 따오면 될 듯하다. "전문 투자 자본이나 금융 자본이 이윤 추구를 위해 만든 영화는-최근 통계로 볼 때 상업 영화 한 편당 예산은 평균 27억 5천만 원이다-상업 영화라고 볼 수 있고, 반면 독립 영화는 창작인 그룹측의 가치관이 반영된 운동성 있는 영화로서, 시장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비타협적 성격을 지닌 영화라고 본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김혜준 실장은 최근 '나비'와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흥행 부진 때문에–이 영화들 중에는 심지어 서울 개봉 이틀 만에, 전국 개봉 일주일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던 씁쓸한 경험을 한 영화도 있다–대두되는 한국 독립 영화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중국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게 나쁜 상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타이타닉' 한 편을 보기 위해 한 달 문화비를 모두 지출해야 할 만큼 극단적인 상업 영화로의 편중 상태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올 한해 오륙백 편의 독립 영화가 제작된 매우 놀라운 현상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제작자 오기민 씨는 12억의 제작비와 홍보 마케팅비 5억으로 총 17억을 들인 이 영화의 총 관객수가 3만 5천 명이었고 결과적으로 11억의 손실을 보았다며 이건 수급면에서 볼 때 '과소비'가 아니었는가 하는 발언으로 그 비통함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 후반부에는 독립 영화의 배급 문제로 넘어가면서 서울에 개봉될 독립 영화 전용관의 미래에 대해 언급했는데, 기자에게는 사회자인 이효인 씨가, 상업 영화 진영에서 흔히 주장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 논리"에 대해 한 따끔한 한마디가 매우 기억에 남았다.

현 한국 영화판에서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 진영이 자유 경쟁을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마치 "자유로운 닭장에 여우와 닭을 함께 넣어두고 함께 살아봐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생산 조건과 홍보, 배급 상황면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진 상업 영화측과 독립 영화가 어떻게 자유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겠다.

끝으로 '사자성어'라는 옴니버스 독립 영화를 잠깐 소개하고 싶다. '사자성어'는 '네 사람이 성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줄여서 만든 말이라는데, 네 명의 감독이 각각 성에 대한 담론을 나름의 개성대로 풀어갔다고 한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 영화의 클립이 잠깐 소개되었는데 상당히 위트있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오기민 씨에 의하면, 독립 장편 영화를 만들면 으레 개인적 출혈을 감수해야 하고 배급관이 없어 상영도 못하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곳에 지원 의뢰를 한 결과 1억 4천만 원의 제작비를 얻어냈고, 상영 또한 인터넷과 해외 상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최소한의 수익이라도 내는 길을 모색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꽤 짧게 여겨질 정도로 진지하게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독립 영화 진영에 산재한 문제들을 한 번에 풀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모색하지는 못했지만, 부산 영화제라는 전체 영화인의 축제에서 독립 영화판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내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었다고 본다.
2001-11-13 21:0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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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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